[기고/이재헌]해외플랜트 저가 수주 폐해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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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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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헌 한국플랜트학회장 한양대 교수
이재헌 한국플랜트학회장 한양대 교수
해외플랜트사업이란 해외에 공장을 지어주는 건설 비즈니스의 일종이다. 지난해 50조 원을 수주한 우리 해외플랜트산업은 반도체나 자동차 못지않게 주요 수출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수년째 국내 건설경기 하락에도 대형 건설업체들이 건재할 수 있는 것도 해외플랜트산업 참여 덕분이다.

최근 프로젝트는 대형화하는 추세로 1조∼5조 원 규모의 메가프로젝트가 전체 해외 수주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사업 관련 위험도 커지고 있다. 50조 원에서 5% 순익을 낸다 해도 2조5000억 원인데 메가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 몇 배의 손실을 볼 수 있다.

아직 그런 재앙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럴 소지가 보이고 있다. 국내 기업 간 출혈경쟁에 의한 저가 수주가 그 전조다. 해외 발주자가 한 프로젝트에 두세 개 한국기업을 경쟁시켜 수주금액을 정상가격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미 중동지역 몇몇 중소형 프로젝트를 이렇게 수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큰 타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메가프로젝트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저가 수주는 프로젝트팀에 큰 부담을 준다. 전체 수주액의 60%에 이르는 기자재를 낮은 가격에 제때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 물건을 싸게 구입하려고 더 많은 제조자들과 접촉하며 납품가를 협상하다 보니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준공일시가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 플랜트 프로젝트에서 적자를 보는 것은 여기서 시작된다. 현장 경험이 적은 수주 영업팀은 저가 수주에 따른 비용 절약에 몰린 나머지 파이프 조립장이 현장에서 500km나 떨어져 있어도 그 심각성을 모른다. 결국 파이프 수십만 개의 열처리나 도색작업이 장거리 운송으로 차질을 빚으면서 시공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출혈 저가 수주는 우리 사회 여러 곳에 피해를 주고 종국에는 경쟁에서 이긴 수주기업도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최근 울산에 있는 중견 기자재 메이커가 자금난으로 가동을 중지했다. 제조원가는 오르는데 납품단가를 내렸으니 당연한 결과다. 기자재를 주문했던 수주기업은 플랜트 준공일시를 맞추기 위해 외국회사의 비싼 기자재를 긴급 구매해야 했고 큰 손실을 입었다.

필자의 걱정은 누가 잘못해 재앙을 일으키는 순간 플랜트산업에 몸 바친 우수한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줄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순간에 직장을 잃었던 플랜트 기술인들의 고뇌에 찬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저가 수주의 폐해를 누가 막아야 하나. 가장 큰 피해를 볼 사람, 즉 자기 재산을 내놓은 투자자가 나서야 한다. 이미 일부 플랜트기업의 경우 투자자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투자자가 사업의 세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해외플랜트사업으로 평생을 보낸 베테랑으로 이뤄진 전문팀에 실사를 의뢰하는 방법도 있다.

국익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요구된다. 기업별로 전문분야를 키울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사업 참여 기업들이 공감해야 효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학술단체 같은 중립적 기관이 여러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해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재헌 한국플랜트학회장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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