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24>‘빛과 그늘의 담채화’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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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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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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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에는 불견풍수(不見風水)라는 말이 있다. 풍경을 일부러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갖 풍경을 자기 방 앞에 불러다 이런저런 이름도 붙이고 이런저런 없는 사연도 만들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누군가 물을 것도 같다.

하긴 그렇다. 그러나 이는 조선의 풍수에 명당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명당이 있다면, 그리고 그런 명당만을 잡아 고른다면 굳이 풍경을 외면하는 건축적 수법이 생길 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견풍수는 ‘명당이 아닌 자리에서 어떻게 불리한 입지를 극복하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생적 노력이다.

우리는 해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다. 눈을 해치기도 하지만 너무 강한 빛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닷가에 지은 집들은 바다 쪽을 향해 창을 내지 않는다. 태양이 너무 눈부신 것처럼 바다는 너무 크고 강렬한 수평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 강렬한 대상들이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임상적으로는 대개 증명이 된 사실이다.

안동의 낙동강가에서 화산을 뒤로하고 병산을 마주하고 있는 병산서원(屛山書院)은 이 거대한 자연의 존재 앞에서 취할 수 있는 건축의 가장 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화산의 산세가 낙동강과 만나는 완만한 비탈면에 자리한 병산서원은 그 경사지를 십분 이용해 만대루의 밑을 지나 입교당과 만나 사당의 정점에서 느끼는 고조되는 공간감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게 계획되었다.

도산서원이 발걸음을 좌우로 흩어지게 만든다면, 병산서원은 빨려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빨려들다가 입교당 마루에 앉아 강 건너편의 병산을 바라보면 왜 만대루가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병산은 서원과 너무 가깝다. 너무 가까워서 그것은 산의 형체가 아니라 어둠의 그림자처럼 풀려 있다. 잉크처럼 풀어지는 그 어둠이 낙동강변을 타고 집으로 스미는 것이다. 만대루는 그 풀려 들어오는 어둠을 다시 산의 형태로 돌려놓는 장치로 작동한다.

불견풍수가 이렇듯 절묘하게 작동한 예는 더 없다. 그 결과 병산서원은 입교당의 판벽으로 뚫린 문을 통해 만나는 뒤란의 빛과, 동재와 서재의 마당, 그리고 만대루를 통해 보이는 병산과 낙동강의 풍경을 마치 빛과 어둠의 수묵에 수놓인 담채화처럼 펼쳐 놓는다. 진경이 그대로 병풍 속에 들어가 있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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