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권지예의 그림읽기]내 마음의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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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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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etry #4, 권현진, 아트블루 제공
Visual Poetry #4, 권현진, 아트블루 제공
“아아, 정말 다시 태어난 것 같아!”

작년 가을에 라식 수술을 받은 딸아이가 틈만 나면 내뱉는 말입니다. 딸이 탄성을 지를 때마다 나도 좀 더 젊을 때 수술 받을걸, 하는 후회의 마음이 살짝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의사는 라식수술을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지금보다 젊었을 때에도 저는 수술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세상을 여러 개의 렌즈로 보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외출할 때면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데 요즘엔 안경이 자꾸 늘어만 갑니다. 원래부터 쓰던 근시용 안경뿐 아니라 콘택트렌즈 위에 쓰는 돋보기와 밤 운전을 위해 도수를 높인 보안경도 장만해야 하는 지경입니다.

제가 안경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이 되고서였지요. 한 반에 안경 쓴 여학생이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예전의 안경은 왜 그리 투박하고 알도 두껍고 뱅글뱅글 돌던지…. 학생들은 보통 굵은 뿔테의 알이 큰 잠자리 안경을 썼는데, 그러면 바로 ‘안경잡이’라는 신분으로 전락하게 되었지요. 아무리 예쁜 표정을 지어 봤자 안경의 인상이 너무 강해 ‘B사감’ 아니면 ‘배삼룡’이란 놀림을 받곤 했지요.

대학에 입학해서 미팅이란 걸 하게 되었을 때 저는 안경을 벗고 나갔습니다. “안경 벗으니까 완전 청순가련형!”이라는 미팅 주선 친구의 낚시성 립서비스 때문이었죠. 움직일 필요 없이 다방에 앉아 한두 시간 파트너와 이야기만 하면 되니 눈이 좋은 척 맨눈으로 앉아 있는 게 뭔 대수겠어요. 흐릿하게 보이는 남학생의 얼굴도 분위기 있었고 ‘조명발’ 때문인지 그의 피부도 더 좋아 보였지요. 파트너도 제가 마음에 드는 기색이었습니다. 대화가 술술 잘 이어지자 남학생은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못 이기는 척 그러자 하고 화장실에 갔습니다. 칸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웬 남자와 딱 마주쳤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파트너 남학생이었어요. “아니, 어쩐 일로?” 내가 얼결에 물으니 그의 얼굴이 빨개지더군요. 그때 누군가가 급히 바지춤을 쥐며 무심코 들어오다 저를 보고는 그대로 튀어나갔어요. 그제야 놀라서 보니 남자화장실이었던 겁니다. 저야말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지요. 얼마나 창피하던지 죽고만 싶었어요.

그날 어둠이 내리는 학교 앞의 거리는 왜 그리 낯설던지요. 버스에 올라 맨 뒷좌석에서 고개를 파묻고 있다가 얼굴을 드는데 차창밖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안경을 벗고 바라본 도시의 밤풍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추상화였던 겁니다. 번져 보이는 네온사인 불빛과 가로등 빛, 잘 보이지 않는 간판, 그리고 어둠은 검은 융단처럼 더 포근하게 느껴졌어요. 이상하게 그 순간, 참 위로가 되더군요. 그 이후로 저는 가끔, 특히 술 취한 밤이면 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곤 했지요.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세상은 극사실주의 회화였지만, 벗고 바라보는 세상은 자유롭고도 아름다운 추상화였으니까요.

이 그림을 보세요. 봄 햇살이 투명한 불꽃처럼 일렁이는 날, 생명들의 찬가가 연두색으로 산야에 울려 퍼질 때 안경을 벗으면 이런 그림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요즘엔 아름다운 것은 눈을 감았을 때 오히려 더 잘 보인다는 것도 알 것 같습니다. 추억이나 기억이나 꿈이 제 마음속 화폭에서 모두 저마다 아름다운 그림이 되기도 하니까요. 사실 라식수술 말고 이런 수술을 해주는 곳이 있다면 달려가고 싶습니다. 심안(心眼)이나 혜안(慧眼)수술.

권지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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