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中 외교부장, 탈북자 북송 반대 절규 못 들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일 03시 00분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어제 서울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탈북자 강제송환 중단을 요구했으나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이 기존 주장을 반복해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탈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을 요청했지만 양 부장은 “예방 내용을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전하겠다”는 의례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지난달 중국이 탈북자 30여 명을 체포한 이후 한국에서는 탈북자 북송(北送) 반대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양 부장이 서울에 도착한 어제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11일째 단식 투쟁을 하던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박 의원은 차가운 텐트 안에서 물과 소금만 섭취하며 버텼다. 미국 인권단체 회원들은 워싱턴 중국대사관 앞에서 강제 북송 항의 캠페인을 벌였다. 양 부장의 구태의연한 대응에 분통이 터진다.

양 부장은 탈북자 문제의 국제화 정치화 난민화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국제사회의 ‘인권 연대’에 눈감은 발언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 2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탈북자 강제송환금지 원칙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의회 중국위원회는 5일 중국의 탈북자 북송과 관련한 청문회를 개최한다. 세계적인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I)도 중국 정부에 체포된 탈북자의 보호를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에는 수만 명의 탈북자가 사실상 난민상태로 불안 속에 힘겹게 살고 있다.

중국이 탈북자를 북한으로 송환하기 전 수용하는 단둥과 투먼 수용소의 참혹한 실상도 드러났다. 탈북자들은 중국 공안이 군견을 풀어 수용자들을 물어뜯게 하고 임신부의 배를 걷어차는 폭력을 휘둘렀다고 증언했다. 북한이 보낸 체포조가 중국 공안과 함께 탈북자를 체포한 사례도 공개됐다. 중국이 이런 짓을 계속하면 북한 독재정권과 함께 탈북자의 인권을 짓밟은 공범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올해는 한중 수교 20주년이다. 김 장관과 양 부장은 어제 ‘아름다운 우정, 행복한 동행’을 표어로 한 45개의 축하행사에 합의했다. 탈북자들의 혹독한 현실을 돌아보면 ‘행복한 동행’ 축하 행사가 사치스러울 정도다. 양 부장은 중국 최고위층에 한국에서 들은 탈북자 북송 반대 절규를 가감 없이 전달하고 탈북자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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