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잘못 설계했다면 담쟁이를 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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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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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위험은 바로 소방서에 접수됐다. 지난해 11월 1일 저녁 ‘차일드세이브’라는 단체가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도로에서 방사선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고 노원소방서에 신고한 뒤 사흘 만에 노원구는 아스팔트부터 걷어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방사성물질인 세슘(Cs-137)이 아스팔트에서 발견되기는 했지만 방사선량이 자연에서 받는 연간 평균보다 4분의 1 정도 높을 뿐 원자력안전법에서 정한 일반인 연간 선량한도(1mSv)보다 낮다고 확인한 바로 다음 날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주민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도 노원구는 왜 아스팔트를 걷어냈을까. ‘가중되는 주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대통령 직속 국가기관이 안전하다고 발표했는데, 누가 주민의 불안을 가중시켰을까.

비만도를 측정하니 정상 구간에서 약간 높은 쪽에 있을 뿐 비만으로 볼 수 없다는 판정인데도 스스로 뚱뚱하다고 생각하고 다음 날 바로 성형외과로 달려가 지방흡입술로 체중을 크게 줄여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뚱뚱하니 성형수술을 받으라고 누가 꼬드겼을까. 이득을 보는 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체중을 줄인 건 개인의 판단이라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문제는 빼낸 ‘지방’이다. 뽑아낸 ‘지방덩어리’를 침실에 두려니 꺼림칙해서 거실에 놓으니 온 가족이 싫어한다. 대문 밖에 놓으려니 이웃이 항의하고, 특수 쓰레기통에 버리려니 그 쓰레기통은 아직 설치도 되지 않았다. 어디에 둘 것인가.

이 ‘지방덩어리’가 특별한 이유는 방사성물질이 섞여 있어 방사성폐기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2000년 도로 공사할 때 포장해 11년이 넘도록 멀쩡했던 아스팔트 덩어리가 졸지에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관리해야 하는 골칫덩어리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이 느닷없는 방사성폐기물은 도로에서 뜯긴 후 지금 구청 뒤 공영주차장에 쌓여 있다. 철거하는 과정에서 방사성물질을 다루는 데 적합한 방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주민의 안전만 고려하고 작업 인부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은 걸까? 보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방수포로 그냥 덮어뒀을 뿐이다.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험하지 않은 위험물’에 대해 주변 주민들이 항의하자 한국전력 중앙연수원으로 옮기려 했다가 한전 노조의 반대에 부딪혔다. 중랑천 건너 이웃한 도봉구는 방사성폐기물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며 ‘염병 걸린 이웃’ 보듯 가까이 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경주에 짓고 있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의 완공 시기는 점점 연기되고 있는데….

노원구에서 촉발된 방사능 아스팔트 공포는 송파구로 번졌다. 송파구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 판정을 무시하고 구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달 멀쩡한 아스팔트를 뜯어내고 도로를 다시 포장했다. 2008년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던 광우병 사태의 데자뷔(이미 본 듯한 느낌)를 보는 것 같다. 곧 방사능 오염 공포가 전국을 휩쓸게 될까?

세계적인 건축가인 미국의 프랭크 라이트는 잘못 설계한 건물에는 담쟁이를 심으라고 조언했다. 노원구든 송파구든 아스팔트를 뜯어내는 토목공학적인 방법보다 그 길을 따라 담쟁이 같은 식물을 심고 방사능 오염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켰으면 그 길이 훨씬 아름다웠을 것이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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