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문재인의 한미 FTA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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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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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문재인 바람이 거세다. 진앙은 4·11 총선 최대 격전지인 부산을 끼고 있는 낙동강 전선이다. 새누리당은 낙동강 전선을 지켜낼 뾰족한 대책이 없어 속앓이를 한다. 어떤 여론조사에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지지율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TV개그 프로그램에는 문 이사장의 특전사 시절 복장을 한 배역도 등장했다.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것과 같은 ‘팬덤(fandom)정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문 이사장은 저서 ‘운명’에서 “그(노무현 전 대통령)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라며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내 삶도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의 개인적 매력도 작용했겠지만 그와 노 전 대통령의 운명적 인연은 ‘문재인 대망론’의 정치적 자산이다. 친노(친노무현) 세력은 이를 지렛대 삼아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문 이사장이 국회의원 한 번하고 끝내려고 출사표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총선을 넘어 대선까지 내다보는 그의 승부수는 친노 세력의 진로를 가를 분수령이다. 지금은 들끓는 반MB(이명박 대통령) 정서에 가려 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노무현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피해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한 것은 시작도 국익(國益)이요, 끝도 국익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이명박 정부 들어서 체결된 한미 FTA에 반대했다. 현 정부 들어 재협상을 통한 추가 양보가 너무 컸다는 점을 들고 있으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 정부가 양보한 것은 자동차 분야지만 자동차업계는 한미 FTA를 지지했다. 돼지고기와 의약품 개방 속도는 늦췄다. 노 전 대통령의 ‘정책 멘토’였던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도 “노 전 대통령은 한미 FTA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며 야권의 한미 FTA 반대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문 이사장의 반대 논리에는 ‘노무현 FTA’와 ‘이명박 FTA’가 다르다는 선악(善惡) 프레임이 작동한 것 같다. 한미 FTA 반대를 반MB와 연결짓는 야권 지지층을 의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핵심가치에 대한 평가를 모른 척한 채 복지 등 다른 노무현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문 이사장은 ‘노무현의 오른팔’이었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한미 FTA는) 개방, 통상정책에 관한 논쟁이지 선악의 논쟁이 아니다. 이 대통령 때문에 그렇게 발전해 버렸지만 이 정권은 곧 끝난다. 결국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 문제”라고 말한 것을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大聯政)에 대해 “선거구 제도 개편을 조건으로 대연정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대연정은 (지지층을 실망시킨)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이 지지층의 등을 돌리게 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다. 안 지사가 한때 스스로 폐족(廢族)이라고 자세를 낮추었을 만큼 노 전 대통령은 실책도 많다. 하지만 한미 FTA는 노 대통령의 뛰어난 결단이요 치적으로 꼽힌다. 노무현 FTA를 건드리지 않고 이명박 FTA만 문제 삼으려다 보면 문 이사장의 말이 계속 꼬일 수밖에 없다.

문 이사장이 노 전 대통령과 같은 길을 걸어온 것은 ‘운명’이었다고 치자. 이젠 문 이사장의 선택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남았다. 노무현 가치에 대한 엄정한 재평가도 피할 수는 없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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