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상훈]비급여 진료, 그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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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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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의료복지, 비급여의 덫’ 시리즈 첫 회를 제작하던 2일 밤. 기자의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눈에 익은 번호. 병원 관계자들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연신 전화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자기 병원의 진료비가 다른 병원보다 비싼 것으로 보도되면 어쩌나. 이런 생각에 속도 탔으리라.

다음 날 병원의 ‘민심’을 알아보려고 전화를 걸었다. 여러 병원에서 “기사 때문에 깨졌다”는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A병원 관계자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간부에게 혼났다”고 했다. B병원 관계자도 “왜 그런 기사를 써 가지고…”라며 원망 섞인 농담을 했다. 대화에서 보도 이후의 병원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비급여 진료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면서도 쉬쉬하는 병원의 태도는 지적해야 하지 않겠는가.

평소 알고 지내던 의사가 “그러잖아도 힘든 병원들을 또 궁지로 모느냐”고 했던 말이 뇌리에 남는다. 의료비 급증이 병원 탓만은 아니라는 얘기였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대한 질타였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역대 정부는 건강보험 혜택(보장성)이 늘었다는 점을 집중 홍보해왔다.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다. 암 환자는 5%의 진료비만 내도록 했다. 2009년에는 경기침체를 반영해 사상 처음으로 건강보험료를 동결하기도 했다.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는데 마다할 국민이 있겠는가. 정책은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환자 부담은 더 늘었다. 1980년 1조4000억 원이던 국민의료비 지출은 2000년 27조 원으로 올랐고, 2009년 다시 73조700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외화내빈(外華內貧). 그 결과는 공공의료 보장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라는 오명이었다.

본보 시리즈에서도 이 점이 확인됐다. 암에 걸린 70대 남성은 18일간 치료를 받고 1156만 원을 냈다. 이 가운데 1030만 원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였다. ‘5% 룰’은 현실이 아니었다.

예정된 ‘사고’다. 현재 암 치료에 투입되는 건강보험 재정은 연간 3조 원 규모다. 국민 3명당 1명꼴로 암에 걸리는 상황인데, 이 돈으로 암 진료비를 메울 수 있겠는가. 건보재정이 부족하니 비급여 진료로 충당한다. 이러니 비급여 진료가 없으면 환자와 병원 모두 암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 장신(莊辛)이란 인물은 왕의 실정(失政)을 간했다가 미움을 사는 바람에 망명을 떠나야 했다. 직후 초나라는 진나라의 공격을 받았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왕은 장신을 찾았다. 돌아온 장신의 첫말이 ‘망양보뢰(亡羊補牢)’였다. 양을 잃은 뒤 우리를 고친다는 뜻이다. ‘뒤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다’로 종종 해석되지만 원뜻은 훨씬 긍정적이다. ‘잘못해 땅을 잃었지만 심기일전하면 세력을 키울 수 있다.’

지금 우리 의료시스템이 망양보뢰의 처지에 있다. 건강보험이란 우리에는 숭숭 구멍이 뚫려 있고, 양들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의료비 증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이 우리마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 건강보험이 세계 최고라는 보건당국의 호언이나 정부의 규제 때문에 경영이 어렵다는 병원의 푸념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를 튼튼하게 보강하려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의료 현안마다 충돌하는 의료계와 보건당국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그게 ‘파국’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
#의료복지#비급여#민심#건강보험#경제적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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