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석훈]‘경제민주화’보다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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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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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민주통합당에 이어 최근 한나라당도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국가는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 제119조 제2항을 당 정책 정면에 내세웠다. 거대 경제세력으로부터 시장과 중소기업,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재벌 개혁에 나서기 위함이라고 한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납품을 하는 중소기업에 불공정거래 행위를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열사가 서로 지원하고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의 고유 업종으로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해 경쟁을 훼손하며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가만둘 수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해 제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정면에 내세우기 전에 그 앞에 있는 제1항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불공정행위와 경쟁 훼손행위는 이런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침해해 제1항을 위반하는 행위이므로 이를 회복하기 위해 당연히 제1항에 근거한 국가 개입이 있어야 한다.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민법에서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거래 당사자가 불공정행위를 했을 경우 거래를 무효로 하거나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상대방에게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사업영역에서 경쟁 훼손행위를 하며 중소기업과 소비자 이익을 침해할 경우 공정거래법에서 강력히 제재하고 있다.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로 특정 계열사의 주주들이 피해를 보았다면 상법에 근거해 구제받을 수 있다. 일감을 지원받은 계열사가 손쉽게 시장지배력을 획득한 후 이를 남용해 불공정행위를 하거나 경쟁 훼손행위를 하면 역시 민법과 공정거래법상의 통제를 받는다.

이와 같이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시장 경제질서에서 ‘자유’의 의미는 경제문제를 경제주체들에게만 맡겨두고 국가는 시장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경제주체가 ‘자유’라는 명분 하에 이를 남용해 시장의 역동성을 담보하는 사적자치(私的自治)와 경쟁을 훼손할 경우 사후적으로 책임을 묻기 위해 국가는 개입해야 한다. 따라서 자유시장 경제질서 회복을 위한 제1항의 국가 개입과 경제민주화 추구를 위한 제2항의 국가 개입 간의 관계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제1항에서는 우리나라가 자유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반면 제2항은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대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제1항이 원칙 규정이고 제2항은 예외 규정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국가의 규제는 사적자치의 원칙이 존중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고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경쟁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을 보호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지금까지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대기업이 불공정거래행위나 경쟁제한행위를 해 제1항의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훼손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더라도 그런 우려만으로 규제해 왔고 규제하려고 한다. 하도급법과 대규모 유통업법,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간 부당지원행위 금지 규정과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정, 중소기업적합업종 법제화 논의 등이 그것이다. 대부분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규제들이고 이것의 헌법적 근거가 경제민주화 조항이다. 그러나 이런 사전적 규제들로 규제의 실효성이 높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거래행위와 경쟁행위까지 규제해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훼손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예외 규정이 원칙 규정을 훼손할 수 있어 위헌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특히 지금처럼 정치권이 헌법 제119조 제2항을 정면으로 내세우며 재벌 개혁을 시도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정치권은 헌법 제119조 제2항을 정면으로 내세우기 전에 그 앞에 헌법 제119조 제1항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제민주화는 자유시장 경제질서의 범주 내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욕물을 버린다고 목욕하던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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