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마이클 와히드 한나]시험대에 놓인 이집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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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와히드 한나 인권운동가
마이클 와히드 한나 인권운동가
한 사람의 운명은 때때로 그가 속한 정부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을 보여줄 때가 있다. 혁명 1년이 된 이집트에서 마이켈 나빌 사나드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사나드는 지난해 대부분을 비좁고 악취가 진동하는 카이로의 엘마르그 교도소에서 단식 투쟁을 하며 보냈다. 새해 첫날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23일 석방됐다. 하지만 그의 투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사나드는 지금까지 투옥된 민주화 시위자들과는 달리 콥트 기독교인 출신이다. 대부분의 이집트인이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이웃 나라 이스라엘 주민들도 이집트에서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 비폭력 평화주의자이기도 하다. 이집트 민주투사들은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사나드는 그렇지 못하다. 이집트 내 인권활동가들조차 그의 투쟁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집트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사나드는 이집트 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정부를 비판해왔다. 2009년에 징병제 반대를 주장했고 2010년엔 소집 통지를 거부해 구금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해 2월 타흐리르 광장에서 “우리는 종교나 군대가 아닌 진정한 시민사회를 원한다”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가 체포됐다. 이후 석방된 그는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군부와 시민들은 한 번도 같은 편이었던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혁명은 독재가 아닌 독재자만을 제거하기 위해 진행돼왔다”고 지적했다. 결국 그는 다시 체포됐고, 체포 13일 만에 군을 모욕한 혐의로 징역 3년(2년으로 감형됨)을 선고받았다. 그에 대한 즉결심판은 공정한 재판 보장과는 거리가 먼 수많은 (인권침해) 재판 중 하나다. 친척들에 따르면 그는 반성문을 거부하고 격정적인 옥중서신을 쓰는 일에 몰두했다. 몰래 반출돼 지난해 12월 온라인에 올려진 ‘한 시민’이라는 에세이에서 그는 “한 사람의 시민이라도 자유롭지 않다면 결코 사회 전체의 자유를 되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이집트 군부는 탄압을 강화해 통치 기반을 다졌고, 최후에는 시위대에게 실탄을 발포하기까지 했다. 희생자 다수는 혁명운동가나 인권운동가, 기독교인 같은 힘없는 소수였다.

일부 운동가는 공개적으로 사나드를 옹호해왔다. 그러나 똑같이 부당하게 징역살이를 했다가 최근에 풀려난 블로거 알라 압델 파타흐에 비하면 사나드는 아주 잠깐 동안만 주목받았을 뿐이다. 이런 차이는 이집트 사회 분위기가 사나드와 같은 이단적인 견해를 존중하는 분위기와 얼마나 거리가 먼지 보여준다. 이집트에 뿌리내릴 다원주의 정치는 단순히 법과 선거제도를 손질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근본적인 사회 변화가 필요하다.

이집트 당국은 모든 정치적 구금자를 풀어줘야 하며, 군사법정에서 선고받은 이들을 모두 시민법정에 세워 다시 재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나드의 구금 및 박해와 같은 잘못된 관행이 사라지도록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기본권에 대한 폭력이 이집트의 국제관계를 해칠 수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난해 사나드를 면회한 이는 “그의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다”고 전했다. 무릇 사회적 변화란 것은 점진적이고, 사나드의 운명에 대한 이집트 내 무관심도 곧바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그와 의견이 다를지라도, 사나드처럼 외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을 존경하게 된다면 이집트는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를 맞게 될 것이다.

-뉴욕타임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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