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연말정산과 인생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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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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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계약금과 연봉은 양측의 합의하에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스포츠 기사에 종종 나오는 문장이다. 왜 받는 측(선수·감독)과 주는 측(구단) 모두 비밀에 부치기로 합의한 걸까. 한마디로 ‘주변 눈치’ 때문이다. 평범한 월급쟁이보다 수십 배나 많은 연봉을 받는 경우엔 질시를 받기 싫어서, 동료 선수나 감독보다 훨씬 적을 땐 자존심 때문에 공개를 꺼린다.

새삼스럽게 스포츠계 연봉 얘기를 꺼낸 까닭은 ‘13번째 월급’을 챙길 수 있는 연말정산 기간이 조만간 시작되기 때문이다.

필자처럼 일반 회사원의 경우는 회사가 월급에서 근로소득세를 매달 떼어내 국가에 대신 납부한다. 이처럼 세금을 원천징수당하기에 샐러리맨은 ‘유리지갑’으로 불린다. 반면 프로 감독과 선수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각자 종합소득세 신고 절차를 거쳐 세금을 낸다.

두 가지 직업군 모두 액수가 커짐에 따라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사업자는 절세(節稅)에 절대 유리하다. 프로 감독과 선수는 별다른 증빙서류 없이도 수입의 39.6%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기준 경비로 인정받는다. 39.6% 한도를 넘어서는 비용도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과세 대상에서 빼준다. 승용차 리스, 트레이너 고용, 운동장비 구입비는 물론이고 보약값까지도 과세 대상에서 제외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런 파격적인 혜택을 받는 선수와 감독들은 팬들에게 멋진 플레이로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탈세 의혹으로 지난해 9월 연예계를 잠정 은퇴한 K 씨가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지 않고, 매달 세금을 원천징수당했다면 지난 연말에도 각종 상을 휩쓸며 여전히 개그계 강자로 군림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임플란트 시술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치과에 갔더니 “카드는 100만 원, 현금은 80만 원”이라는 명쾌한 대답을 들었다. 또 몇 달 전부터는 단골 동물병원에 꼬박꼬박 현금결제를 하고 있다. 원장님은 “카드로 하시면 진료비에 신설된 10% 부가세를 더 내야 하는데 현금으로 하시면 종전대로 받을게요”라며 필자를 배려해 줬다. 몇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생생한 탈세(脫稅) 현장을 고발하지 못하는 것이 서민들의 서글픔이다.

그런데 고액 연봉 스포츠인들은 “선수생명이 짧으니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세금 혜택도 큰 것은 아니다”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인 평균 수명이 지난해 기준으로 남성 78세, 여성 84세로 늘어난 것을 감안할 때 샐러리맨의 ‘직장생명’도 상대적으로 짧아졌다. 정년퇴직 후에도 20년 이상 더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에 걱정이 태산이다. 정년 연장 얘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청년 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2050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성은 85.1세, 여성은 89.3세에 이르고 ‘평균 수명 100세 시대’도 언젠가는 도래할 것이다. 인생을 한꺼번에 정산(精算)하기에는 버거운 숫자로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있다.

매년 연말정산 기간을 자신의 지난 한 해 삶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으로 활용해 보자. 연말정산을 꼼꼼히 잘하면 억울하게 더 낸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매년 인생정산을 충실히 해 나간다면 노력한 만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부분을 되돌려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겪게 될 시행착오도 덤으로 줄일 수 있어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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