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以和爲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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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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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사회부장
하종대 사회부장
‘경악 분노 비탄.’

지난해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에 드러난 대한민국 국민의 감정이자 정서다. 세상사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모두 있기 마련이라지만 노애(怒哀)만 보일 뿐 희락(喜樂)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주요 기사 헤드라인에 등장한 단어는 거의 모두 부정적인 말들이다. ‘폭력 뇌물 추락 쉬쉬 판박이 난장판 거짓말 블랙홀 편들기 난타전 대공황 정글정치 불법시위 시한폭탄….’ ‘공존경제’처럼 가물에 콩 나듯 나온 긍정적 이미지의 단어조차 현재 그렇다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이런 사회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제무대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매우 긍정적이다. 1960년 79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2010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2만591달러로 50년 사이에 261배로 늘었다. 반세기 전 연봉을 이제는 1.4일만 일하면 버는 셈이다. 정치적으로도 한국은 여야의 정권교체가 두 차례나 평화적으로 이뤄짐으로써 ‘성공적인 민주주의 이행 국가’로 평가된다.

최근 계층 간 소득격차가 화두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2007∼2008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 20%는 하위 20%의 4.7배를 번다. 이는 일본의 3.4배, 독일의 4.3배보다는 많지만 프랑스의 5.6배, 영국의 7.2배, 미국의 8.4배보다 적은 편이다. 중국은 상·하위 격차가 12.2배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는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다. 전체 실업률의 두 배에 이르는 청년실업률은 10%를 오르내린다. 체감실업률은 30%에 가깝다. 청년 3, 4명당 1명꼴로 백수인 셈이다.

직장이 있어도 죽을 맛이다. 택시운전사를 비롯해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해도 150만 원을 벌지 못하는 노동자가 수두룩하다. 근로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으로 모두가 불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은 2193시간으로 세계 1위다. OECD 국가 평균 1749시간보다 무려 444시간이나 많다.

자식 대에 희망이라도 걸고 싶지만 사정은 녹록지 않다. 계층 간 교육 격차가 커지면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윗목도 따스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이해관계가 맞물린 집단끼리의 갈등과 반목은 갈수록 격렬해진다.

공자는 이를 일찍이 간파했다. 그는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불환빈이환불안(不患貧而患不安)”이라고 말했다. ‘부족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않은 것을 걱정하며,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지 않음을 걱정하라’는 뜻이다. 잘사는 것 못지않게 더불어 잘살며, 나아가 편안하게 잘사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이화위귀(以和爲貴)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화합을 귀중하게 여기라는 말이다.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집단 계층끼리 격렬하게 반목하는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다.

올해는 흑룡(黑龍)의 해다. 제야(除夜)의 종소리가 울리기 직전 서울역 지하도에서 만난 6년차 노숙인 김모 씨(47)는 “새해엔 두 딸을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흑룡의 기상으로 김 씨를 비롯한 5000만 국민 모두가 기대와 희망을 현실로 일구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올해는 대통령도 새로 뽑는다. 사회구성원 간의 조화와 화합을 중시하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하종대 사회부장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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