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니나 흐루쇼바… 격동의 2011&2012]<3>위기의 푸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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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흐루쇼바 미국 뉴스쿨대 교수 흐루쇼프 손녀
니나 흐루쇼바 미국 뉴스쿨대 교수 흐루쇼프 손녀
차르가 경외의 대상이 아닌 조롱의 대상이 된다면 사임을 준비하거나 친위 쿠데타에 대비해야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그런 처지다. 8년간 대통령을 지낸 뒤 3선 연임을 금지하는 법에 따라 총리를 맡은 그는 내년 3월 대선에 다시 도전해 크렘린 궁에 재입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재고돼야 한다.

재집권 계획에 국민들 반발 조짐

올 초부터 인터넷에서 푸틴의 재집권 계획에 대한 반발이 심상치 않았다. 여름 무렵 친(親)푸틴 청년단체 ‘나시(Nashi)’의 캠프를 찾은 푸틴 덕에 웃을 일이 있었다. 푸틴이 자신의 체력을 뽐내려는 듯 맨손으로 인공암벽 등반에 도전했다가 결국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뛰어내렸다. 또 푸틴이 다이빙을 즐기다 고대 그리스 항아리 두 점을 발견한 일도 있다. 알고 보니 연출된 쇼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총리실 공보실장이 푸틴의 이미지를 위해 항아리를 미리 가져다 뒀다는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을 했을 때 국민은 또 한 번 웃었다.

만약 러시아 정부의 무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푸틴의 지지도를 떨어뜨리기 위한 음모로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말로 푸틴은 신임을 잃고 있다. 최근 모스크바 올림피스키 경기장에서 열린 격투기 경기에서 러시아 선수 표도르 에밀리아넨코가 미국 선수를 이기자 푸틴이 예정에 없이 링에 올랐다. 열혈 팬인 푸틴이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지만 관중은 야유를 보냈다. “푸틴, 집에나 가라.” 군중이 정치적으로 하고 싶은 말도 같았을 것이다. “푸틴, 정치에서 빠져라.”

푸틴은 대중 선전활동이 통치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는 돌고래와 아기들에게 키스를 했고, 가슴을 드러낸 채 말에 올라타 야성미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장 사건으로 당황한 푸틴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실제로 그 일 이후 푸틴이 모습을 드러낸 건 통합러시아당 전당대회가 유일했다. 푸틴은 지난달 말 전당대회에서 614명의 대의원 만장일치로 차기 대선 후보로 추대됐다. 하지만 이달 4일 치러진 러시아 총선에서 통합러시아당의 득표는 50%를 넘지 못했다. 게다가 부정선거 의혹도 받고 있다. 선거 모니터에 참여했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대부분 정당이 이번 총선 과정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푸틴의 과도한 자만심은 그가 12년 동안 쌓아온 강한 남자 이미지를 약화시켰다. 결국 자아도취적인 선전활동과 주름 제거 시술은 러시아 국민에게 철권통치를 해온 지도자에 대한 두려움은커녕 존경심조차 자아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이 푸틴에게 보내는 야유는 그가 러시아를 1차 원자재만 수출하는 ‘바나나 공화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더는 그의 통치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만의 원인과는 관계없이 자유에 대한 갈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경멸과 웃음으로 표현될지라도 그건 변화에 대한 희망이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 최대 규모의 반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희망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마초’ 이미지, 조롱의 대상으로

푸틴의 장기집권 드라마에 따르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푸틴 총리가 내년 대선에서 역할을 맞교환하게 된다. 한편에서는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이 메드베데프 대통령 자리를 대신해 경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푸틴에게는 있을 수 없는 시나리오로 보인다. 푸틴은 종종 스탈린과 비교되지만 소련이 해체된 지 20주년을 맞는다. 오히려 푸틴은 장기집권으로 시대를 역행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닮은꼴이다.

니나 흐루쇼바 미국 뉴스쿨대 교수 흐루쇼프 손녀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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