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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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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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2주 전 캐나다 로키 산맥(앨버타 주)의 휴양타운 밴프를 찾았다. 크리스마스까지는 보름 이상 남은 12월 초였는데도 이곳은 마치 크리스마스 같았다. 상점과 호텔이 줄지은 도로 양편이 포인세티아를 본뜬 초록과 빨강의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예쁘게 치장돼 있어서다. 그 모습은 주변 런들 산과 캐스케이드 산의 설경을 배경으로 동화책 속 그림처럼 다가왔다. 라디오에선 늘 크리스마스캐럴이 흘러나왔다. 진행자 멘트도 거개가 ‘생나무 트리를 싱싱하게 유지하려면 구매 즉시 뜨뜻한 물에 잠시 담가두라’는 등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런 이들이 내겐 이렇게 다가온다. 사계절 외에 또 하나의 계절을 안고 사는 것으로. 한 달 전부터 달구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산중의 밴프나 대도시 밴쿠버도 다르지 않다. 밴쿠버의 트리니티가(街)에서는 매년 전등장식 집 선발대회를 연다. 그 환상적인 장식에서 열정이 전해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우울한 겨울을 즐겁게 보내려는 지혜의 소산이라 이해된다.

유럽도 같다. 어느 나라건 도시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선다. 주로 시청 마당과 철도역 등 공공장소를 이용하는데 이 노천임시시장은 온종일 열린다. 하지만 법석대는 시장의 제 모습은 해지고 난 뒤에 비로소 펼쳐진다. 퇴근한 시민들은 아이들 손을 잡고 나와 노점을 기웃거리며 선물을 고른다. 아이들은 군밤이며 꿀을 발라 구운 땅콩 등 군것질거리를 들고, 어른들은 삼삼오오 시장통에 선 채로 컵에 따른 글루바인(뜨겁게 데워 마시는 와인)을 홀짝대며 담소한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인상적이었다. 매년 시청 안의 눈 덮인 공원에 들어서는데 매일 저녁 북적댔다. 눈밭에선 말이 끄는 썰매가 달렸고 그 옆에는 나무로 지은 작고 예쁜 크리스마스 우체국이 세워졌다. 마켓에서 카드를 사 여기서 써서 부치라고 마련한 것이다. 이즈음 시청사는 한밤에도 열어둔다. 선물을 직접 만들려는 시민을 위한 공방이 늦게까지 문을 열어서다. 고풍스러운 청사 2, 3층 전면의 유리창은 매일 한 칸씩 커튼으로 가린다. 밝혀진 방의 창문 수로 크리스마스까지 남은 날수를 알리는 것이다.

캐나다 취재를 마치고 귀국한 건 지난주초. 이튿날 서울 도심의 한밤 퇴근길에서 나는 허전함과 황량함에 의기소침해졌다. 분명 크리스마스 시즌인데도 캐럴은커녕 시청 앞에 세운 크기만 큰 트리 하나 외엔 별 장식도 없던 무표정한 거리 모습 때문이었다. 길거리에서, 혹은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캐럴을 들은 게 언젠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질 않지만 우리가 왜 이리 무미건조해졌는지는 애써 묻지 않을 테다. 자영업자의 가계대출이 100조 원을 넘겼고 빚진 가구의 평균부채가 8000만 원을 웃돌며 가처분소득보다 금융부채가 더 많은(109.6%·2011년 가계금융조사) 현실의 주인공이 나란 걸 잘 알아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일을 가장 많이(연간 2074시간)하면서도 갚을 돈이 쓸 돈보다 많은 우리. 그러니 크리스마스트리나 장식을 설치하거나 둘러볼 여유가 없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낼모레는 크리스마스이브이고 예수 탄생이 주는 메시지는 ‘희망’이다. 그러니 다시 중산층으로 복귀할 그날이 반드시 올 걸로 믿으며 자신을 향해 이렇게 한 번 외쳐보자. ‘메리 크리스마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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