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제균]‘노블레스 꼬불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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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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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정치부장
박제균 정치부장
“대공황(大恐慌). 말 그대로 대공황이다.…2500년 전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산정에서 세웠던 다수결의 원리가,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근대 영미(英美)의 전통이 일군 대의민주주의가, 피비린내 났던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에서 꽃피운 정당 정치가, 1987년 6월 서울의 함성이 쟁취한 직선 대통령제가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른바 ‘민주주의 대공황’이다.”(동아일보 12월 1일자 A1면)

본보는 1∼7일자에 ‘2012 민주주의 대공황을 넘자’는 시리즈를 연재했다. 1부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에 왜 ‘대공황’이 밀려왔는지를 진단하고, 2부는 민주주의 대공황을 넘기 위한 대안으로 ‘공존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왜 한국만 민주주의 대공황?

정치가 흔들리는 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기존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부구조’(경제시스템)가 흔들리니, 그 위에 선 ‘상부구조’(정치체제)가 요동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에선 민주주의 기본원리라고 할 수 있는 다수결과 대의제, 정당정치가 요동치는 진폭이 한국만큼은 아니다. 유독 한국만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뽑혀나갈 지경이다. 도대체 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과도하게’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그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올해 여든 살의 이용희 의원은 무소속→신민당→민한당→민주당→평민당→열린우리당→자유선진당 등으로 당을 바꿔가며 충북 보은-옥천-영동 지역구에서만 5선을 했다. 그런 이 의원이 내년 총선에선 민주당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인 아들 재한 씨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려다 선진당으로부터 ‘해당(害黨) 행위자’로 찍혔다. 그러자 아무렇지도 않게 민주당에 입당 신청을 했다.

로마 공화정의 창시자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집정관 당시 아들 두 명이 왕정복고 음모에 가담하자 직접 사형을 결정했다. 아들들이 채찍질 당한 뒤 도끼로 목이 잘리는 장면까지 입회했다. 최근 이탈리아 복지부 장관은 국민들에게 ‘복지 축소’를 발표하다 눈물을 흘렸다. 그가 흘린 눈물은 과거부터 내려온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의 결정체다.

우리는 어떤가. 소위 노블레스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는 ‘꼬불친다’는 속어가 어울릴 정도다. ‘꼬불친다’는 자기 몫을 챙기려고 감춘다는 뜻.

판사는 임용되면서 3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다. 일반 정부부처에선 고시 붙은 5급 사무관이 20년 가까이 근무해야 3급이 된다. 법원에는 일반 부처에 2∼4명 정도인 차관급 이상도 150여 명이나 된다. 판사에게 ‘공무원 최고 대우’를 보장해주는 건 이런저런 눈치 보지 말고 ‘법관의 양심’(판사 개인의 양심이 아니다)에 따라 재판을 하라는 취지다. 그런데 이런 판사들이 ‘SNS상의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사실상 ‘집단행동’을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적어도 판사라면 자신들의 문제보다는 국가적인, 공적인 어젠다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SNS 탓보다는 자기희생을

검경 수사권 싸움은 또 어떤가. 검사와 경찰대 출신 고위 경찰의 이전투구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시앗(남편의 첩) 싸움보다 덜하지 않다. 여기에 일반 국민과는 비교가 안 되는 노후연금을 받으면서도 ‘전관예우’ 폐지에 불만을 터뜨리는 공무원, 자손들이 ‘마르고 닳도록’ 해먹게 계열사를 늘려 중소기업 업종에까지 끼어드는 대기업까지…. ‘꼬불칠 것’이라곤 없는 2040세대를 분노케 한다.

우리 사회 노블레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사회 질서 전반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져 ‘민주주의 대공황’을 부른다. 내년 총선·대선을 맞아 한국의 노블레스들도 먼저 자기희생을 보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계속 SNS 탓만 하다간 그야말로 ‘대한민국 대공황’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치달을 것이다.

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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