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정훈]순직 소방관에 진 ‘목숨의 빚’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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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사회부 차장
박정훈 사회부 차장
“목숨을 빚졌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내년 1월부터 시상하는 ‘영예로운 제복상’에 매년 3000만 원의 상금을 내놓기로 한 노블레스의 명제열 사장(47)은 “너무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했다. 3일 경기 평택시의 화재 현장에서 희생된 이재만 소방위(39)와 한상윤 소방장(31) 이야기였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30대 청년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했다. 명품 브랜드를 소개하는 잡지사를 운영하는 그는 “목숨을 빚지고 고작 돈밖에 내놓을 수 없어 부끄럽다”고도 했다. 명 사장은 계속되는 소방관의 안타까운 소식에 올해 9월 “힘이 되고 싶다”며 본사를 찾았다.

타인의 삶을 지키려다 어린 자녀들과 부인을 남기고 떠난 그들에게 우리 모두는 큰 빚을 졌다. 그들은 왜 목숨까지 내던지며 불 속으로 뛰어든 것일까. 국민 대다수는 5일 치러진 그들의 영결식에서 송탄소방서장이 무릎을 꿇고 유족에게 사죄하는 사진에 가슴이 메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복을 입고 희생당한 그들에게 죄스러운 마음도 생겼을 것이다. 우린 그들을 얼마나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것일까.

소방관은 불을 보면 달려들 수밖에 없다. 미련해 보이지만 그게 그들의 숙명이다. 자기 목숨보다 남의 목숨을 먼저 생각하는 게 소방관의 ‘직업 DNA’다. 그 숭고한 직업관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소방방재청 이성묵 구조계장은 “화재현장에서는 천장이 무너질 수 있고 가스 폭발이 생길 수도 있지만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진입한다”고 했다. 태풍이 오고 수해가 닥쳐도 소방관들은 인명 구조의 최전선에 선다. 화마(火魔)와 수마(水魔)가 사람을 가릴 리 없다. 그러다 보니 매년 6∼9명의 소방관이 순직한다. 공상(公傷)하는 소방관은 한 해 2000∼3000명이나 된다.

이재만 소방위가 순직 전에 받은 월급은 400만 원 정도다. 본봉 240만 원에 위험근무수당 5만 원, 화재진화수당 8만 원, 그리고 시간외근무수당 야근수당 휴일근무수당 등이 150만 원 남짓이다.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잠자고 쉬고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까지 목숨 걸고 일하며 받는 월급이니 많다고 하긴 미안하다. 유족들은 이제 그마저도 없이 살아가야 한다. 이 소방위의 부인과 두 아들, 그리고 한 소방장의 부인과 배 속의 태아, 쌍둥이 아들(4)은 앞으로 누굴 의지하며 살아야 할까.

5일 두 소방관의 영결식에서 이 소방위의 둘째 아들 지호(9)는 “아빠가 뭐하시는 분이었는지 아느냐”는 김황식 국무총리의 질문에 “소방관”이라고 힘차게 대답했다. 아빠의 죽음은 실감하지 못하면서도 ‘훌륭한 아빠’라는 자부심이 컸던 모양이다. “국가의 아들로서 부끄럽지 않게 죽었으니 여한이 없다”고 한 이 소방위의 아버지(72)도 자부심으로 슬픔을 극복했다.

제복을 입고 봉사하는 그들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두 소방관이 순직한 3일부터 5일 사이 ‘소방관’ 관련 트윗은 9670건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검색어(9만947건)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그들의 희생의 의미를 우리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닌지…. 군복 경찰복 소방복을 입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있는 MIU(Men In Uniform·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1분만이라도 진심을 담아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동아일보와 채널A가 만든 ‘영예로운 제복상’이 그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 본다.

박정훈 사회부 차장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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