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김선동 고발 못하는 국회의장의 직무유기

  • Array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조수진 정치부 기자
조수진 정치부 기자
박희태 국회의장이 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표결 처리 당시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에 대해 “고발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11월 22일) 열흘 만이다. 박 의장은 기자들에게 “김 의원 사건은 사법당국(검찰을 지칭한 듯)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박 의장 측 관계자는 “애초부터 검찰이 서둘러 수사를 했으면 될 일이었다”며 검찰을 원망한 뒤 “시민단체 고발(11월 24일)도 이뤄져 수사 요건이 갖춰진 만큼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는 “김 의원에 대한 추가 고소가 과연 무슨 실효가 있는지 의문스럽다”고도 했다.

박 의장의 이 같은 태도는 국회의 수장(首長)이자 질서유지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행위는 대의민주주의를 유린한 폭거로 명백한 범죄다. 김 의원이 최루탄 테러 전 보좌관들에게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도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의장은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추락시킨 전대미문의 사건에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국회 내부에서 일어난 일의 처리를 검찰과 시민단체에 미루는 것은 그러잖아도 국민의 지탄을 받아 온 국회의 권위를 더욱 추락시킬 뿐이다.

형평성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국회 사무처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 당시 본회의장 4층 방청석 유리문을 파손한 민노당 당직자 2명을 검찰에 고발(11월 29일)한 것은 ‘주범’은 제쳐놓고 ‘종범’만 처벌하겠다는 황당한 발상이다. ‘힘 있는’ 국회의원은 감싸고 상대적으로 ‘힘없는’ 당직자들만 처벌하겠다는 이중적 태도다. 그렇다면 과거 민노당 강기갑 의원의 ‘공중부양’과 민주당 문학진 의원의 ‘해머사건’은 왜 고발했으며, 법원은 왜 이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는지 의문이다.

박 의장의 ‘관용’ 덕에 김 의원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심경’을 운운하며 의인인 양 활보하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반(反)FTA 집회 때마다 특별출연해 법과 의회민주주의를 조롱하고 있다. ‘부상(副賞)’으로 민노당 원내부대표로 선출되기도 했다. 박 의장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결국엔 국회의 오욕을 제 손으로 처리하지 못한 책임자로 남게 될 것 같다. 그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게 과연 맞나 싶다.

조수진 정치부 기자 jin06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