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동현]론스타 사태서 얻은 값비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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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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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버클리대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1991년 ‘국가의 책무(The Work of Nations)’라는 책을 출간했다. 당시 미국은 경제적으로 무척 복잡한 상황이었다. 1980년대 줄곧 지속되었던 경기 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무역 활성화를 위한 회심의 카드였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한 논의도 지지부진했다. 특히 소니와 마쓰시타 등 일본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을 대거 인수합병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라이시 교수는 글로벌 시대에 국가 경쟁력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해외에 주요 연구개발과 생산설비를 갖춘 미국 기업과 미국에 주요 공장과 연구소를 세운 해외 기업 중 누가 더 미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그는 자국 근로자를 고용해 고급 기술과 생산을 맡긴 해외 기업을 선택했다.

미국 경쟁력의 원천은 자국민 소유의 기업이 아니라 미국 근로자이며, 이 근로자들이 가진 기술과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기업이 국적과 관계없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역설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의 주장이 노동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글로벌 시대에 편협한 ‘민족주의(nationalism)’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논란에도 불구하고 론스타에 대한 강제매각 명령을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문제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꼭 한 번 짚어봐야 할 점은 론스타 사태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론스타에 대한 징벌이나 대주주 자격 시비 등이 논란이지만 밑바탕에는 해외 자본에 대한 감정적 거부감과 금융산업의 경쟁력 문제가 깔려 있다.

사실 외환은행 사태의 시작은 외환위기 때 여과 없이 드러난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부실한 경쟁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외환위기와 카드대란으로 부실에 빠진 외환은행 정상화가 핵심 이슈였다. 그러나 외환위기나 카드대란 속에서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나라 금융회사에 투자하려는 기관을 찾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실제로 1998년 외환은행에 투자했던 독일의 대형은행인 코메르츠방크는 2003년 론스타에 지분을 넘길 때까지 1조 원 정도를 투자해 큰 손실을 보고 철수하기도 했다.

이런 교착상태에서 찾은 차선책이 투자 의지가 있는 해외 사모펀드였다. 물론 제일은행 한미은행 외환은행을 인수한 해외 사모펀드들은 금융 노하우가 풍부한 전략적 투자자는 결코 아니다. 이들은 부실기업을 인수해 구조조정한 후 이익을 보고 되파는 재무적 투자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위험을 감수하고 자금을 조달한 그들의 가치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 분명 최선은 아니었지만 차선으로 이들이 부실 은행을 연착륙시킨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번 론스타 사태에서 비싸게 배웠듯이 당시는 사모펀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법규나 제도가 미비했다는 것이다.

비싼 교훈을 얻은 만큼 이제 논의의 초점은 론스타가 아니라 법규나 제도의 보완과 함께 문제의 출발점이었던 외환은행의 경쟁력에 모아졌으면 한다.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 외환은행이 국제 경쟁력을 갖고 유럽 지역에서 더욱 확산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할 때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금융위원회의 결정은 과거보다는 미래를 위한, 정치적이기보다는 정책적 관점에서 내린 선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아예 모르거나 그냥 배 아프면 지는 것이다. 미래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염두에 두고, 이길 수 있는 전략적 결정이 계속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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