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권효]울릉도 주민에 진짜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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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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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효 대구경북취재본부장
이권효 대구경북취재본부장
“지금 국립공원 지정을 주장하는 것은 주민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겁니다.”

경북 울릉군 북면 현포2리 안성덕 이장(55)은 29일 “일주도로 같은 기반 조성이 훨씬 더 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이장은 10여 년 전 울릉도에 정착한 가수 이장희 씨(63)의 이웃이다. 이 씨는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울릉도는 나의 천국’을 올해 발표했다. 울릉군은 최근 그의 집에 노래기념비를 세웠다. 안 이장은 “하루 빨리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섬이 엉망이 될 정도라면 이 씨가 이런 노래까지 부르겠느냐”고 반문했다.

국회 독도영토수호대책특위 김을동 의원(미래희망연대)은 최근 여론조사를 한 결과 국민의 90%가 울릉도 독도의 국립공원 지정을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특위 의원 10명은 올해 4월 환경부에 국립공원 지정 요청서를 제출하는 등 국회와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국립공원 지정을 추진했다. 그때마다 울릉 주민 95%가 반대했다.

농사를 짓는 안 이장은 2년 전 육지에서 있었던 딸 결혼식에 못 갔다. 여객선이 8일 동안 끊겼기 때문이다. 현재 도동항에 들어오는 2000t급 여객선은 파도 때문에 갑작스레 결항하는 경우가 잦아 주민 1만여 명은 이런 당황스러운 일을 자주 겪는다.

다음 달 초 울릉도 개척(1882년) 129년 만에 역사적 사건이 예정돼 있다. 섬 일주도로(44km) 중 개통되지 않은 4km를 2015년까지 연결하는 공사가 시작된다. 1963년 착공한 일주도로는 찔끔찔끔 공사를 해오다 미개통 구간은 “공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중단됐다. 울릉군과 경북도가 정부에 수백 번 건의한 끝에 겨우 국비지원이 가능해졌다. 미개통 구간 앞에서 되돌아오는 불편은 살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육지 사람들은 울릉도가 오징어와 소라, 전복 같은 수산업에 호박엿으로 먹고사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지금 울릉도를 먹여 살리는 산업은 ‘관광’이다. 연간 관광소득이 690억 원인 데 비해 농축산업이 160억 원이고, 어업은 150억 원으로 가장 낮다. 동해에도 중국 어선이 늘어나 오징어 어획도 점점 줄어든다. 주민들이 “믿을 건 관광뿐”이라고 하는 이유다.

지난달 초순 울릉 관문 도동항은 관광객 30만 명 돌파를 기념하는 행사로 떠들썩했다. 일주도로가 반세기 만에 이어지고 5000t급 배가 날씨에 관계없이 드나드는 신항을 건설하면 연간 관광객 50만, 100만 명 시대도 가능하다는 부푼 꿈이 섬에 가득하다. 최수일 군수(59)도 “지금 울릉에 필요한 건 주민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국립공원이 아니라 관광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환경부가 2004년 국립공원을 추진했을 때 주민들은 “섬을 짓밟지 말라”며 막았다. 무조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관광으로 살 수 있도록 육지에서 쉽게 오가고 정주 여건도 갖춘 뒤 검토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외면한 채 이번처럼 느닷없이 “여론조사를 해보니 국민 대부분이 국립공원에 찬성한다”고 하면 주민들은 마음을 졸이지 않을 수 없다.

섬을 개척하고 명이나물을 뜯어먹으며 악착같이 살아온 주민들에게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주는 국립공원은 자부심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녹색관광섬’이라는 울릉도의 꿈이 동해를 건너 국회까지 날아갔으면 하는 게 지금 울릉 주민들의 심정이다.

이권효 대구경북취재본부장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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