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동정민]‘최루탄 테러’ 눈감고 지역구 예산만 챙기는 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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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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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정치부 기자
동정민 정치부 기자
“지역구 예산 챙기고 빨리 유권자들 만나러 내려가야 하는데 답답해 죽겠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한 데 따른 여야 대치로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 차질이 빚어지자 영남권의 한 의원은 24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푸념했다.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최루탄 테러’로 우리 국회가 국제사회의 조롱을 받고 있지만 많은 의원은 예산안 처리 시점에 더 신경을 쓰는 눈치다.

법정기한(12월 2일) 내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일 90일 전(내년 1월 12일)부터는 인터넷 외의 공간에서 의정활동 보고를 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지역구 전체를 돌며 의정보고서를 돌리고 의정보고 행사를 개최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리는 만큼 12월 초순이나 중순에는 예산안을 처리하고 지역구에 내려가야 한다는 게 이들의 솔직한 마음이다.

이번 의정보고는 현역 의원으로서의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역구 예산을 많이 따낸 뒤 이 내용이 반영된 의정보고서를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는 것이다.

기상천외한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사건으로 국격은 무너지고 국민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도 “한미 FTA 비준안 처리 과정을 보면 자존심 상해서 못 살겠다. 국민은 고사하고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지에 혈안이 돼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답답하다. ‘후진’ 국회부터 바꾸라는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은 모양이다. 정치권은 국회 폭력을 추방하기 위한 국회 선진화 방안부터 논의해야 한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 강화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제도, 안건 자동상정 제도 도입을 전제로 한 국회 폭력 추방 논의가 일부 있긴 했지만 여당은 후자만, 야당은 전자만 강조하다 유야무야됐다. 내년 총선 결과를 점치기 힘든 지금이 오히려 타협하기에 좋은 때일 수도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불요불급한 지역구 예산을 과감히 포기하고 어려운 청년, 노인, 실직자들에 대한 예산을 늘리는 데 앞장서라고 해봐야 ‘쇠귀에 경 읽기’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바뀌고 있다. 지역구만 챙기는 이들과 국가 발전 및 국민 복지를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는 이들을 가려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동정민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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