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정미경]‘통영의 딸’ 구하기, 加의회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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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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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워싱턴특파원
정미경 워싱턴특파원
미국 워싱턴 근교 게인스빌에 사는 박인영 씨는 주말이 되면 바빠진다. 그는 2개월 전부터 재미한인 모임을 찾아다니며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통영의 딸’ 신숙자 씨와 두 딸 구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그는 목발을 짚고 서명을 받으러 다닌다.

“별로 힘든 줄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하루에 모임 한 곳밖에 갈 수 없는 게 안타깝죠. 생각 같아서는 서너 곳을 찾아다니고 싶은데….”

정작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일부 교민의 무관심이다. 한국에서 구명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지만 재미한인 사회에서는 아직 ‘통영의 딸’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설사 안다고 해도 “납북자가 많은데 왜 신 씨 구명운동만 벌여야 하느냐” “(신 씨의 남편) 오길남 박사는 자신이 좋아서 북한에 갔던 사람인데 왜 그런 사람의 가족을 구출해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일이 상황을 설명해가며 그는 2개월여 동안 13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는 온라인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9월 말 청원전문 사이트(change.org)에 신숙자 씨 송환 촉구 서명 코너를 만들었다. 현재까지 340여 명의 온라인 서명을 받았다. 미국뿐 아니라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서명을 한 사람들이 있다. 그는 “온·오프라인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라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박 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70년대 미국에 건너 와 30년 넘게 신장전문의로 일하다 2009년 은퇴했다. 1990년대 초 오 박사가 쓴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을 읽고 이들 가족의 사연을 접하게 됐다.

그는 14일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총회에서 오 박사를 처음 만났다. 오 박사는 그의 손을 잡고 “먼 미국 땅에서 이렇게 나서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오 박사에게 “사람 구하는 데 한국, 미국이 어디 있냐”며 “더 열심히 뛰겠으니 지켜봐 달라”고 약속했다.

캐나다에서도 신 씨 구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연방의회까지 나섰다. 자유당 중진으로 법무장관까지 지낸 어윈 코틀러 의원은 이르면 이달 안에 신 씨 구명 촉구 결의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외교위를 거쳐 올해 안에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신숙자 결의안이 채택되는 것이다. 한국 국회에서 올9월 신숙자 결의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상임위 상정도 못하고 있는데 캐나다 의회가 먼저 나서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 의회의 신숙자 결의안 채택에는 캐나다 북한인권협의회가 적극 나섰다. 이 단체의 이경복 회장은 최근 신 씨 송환을 촉구하는 캐나다 교민 1500명의 서명을 받아 코틀러 의원에게 전달했다.

그는 “신 씨 사연을 들은 코틀러 의원이 ‘내가 나서서 결의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며 “신 씨 구명뿐만 아니라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와 수감자 석방 등 북한 인권에 대한 광범위한 내용을 결의안에 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박사는 14일 IPCNKR 증언에서 “신숙자 모녀 구명에 국제사회가 나서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는 “가족을 구하는 일이 나에게는 전부”라며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호소했다. 가족을 살리려는 그의 절박한 노력이 재외 교민들의 마음을 울리면서 속속 동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정미경 워싱턴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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