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저축은행 부실 수사, 말 못할 속사정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검찰이 어제 수사 결과를 발표한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 5개 은행의 9조 원 규모 비리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모두 76명이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악성 대형 범죄’로 규정한 이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최고위직 인사는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이다. 그는 금감원장 취임 직전에 부인 명의로 보유한 주식을 매각 또는 백지신탁하지 않고 명의신탁해 보유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부산저축은행 비리의 본질과 무관하다.

이 사건의 핵심은 6조315억 원에 이르는 불법 대출과 3조353억 원에 이르는 분식회계에 정·관계 실세들이 어떻게 관련됐느냐 하는 것이다. 대검 중앙수사부는 8개월 동안 부산저축은행그룹 전·현직 임원 20여 명의 비리를 밝혀냈다. 김두우 전 대통령홍보수석,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 등이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 로비에 개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1조 원대에 이르는 저축은행 임직원과 관련 업체 보유 부동산 및 은닉 재산을 찾아내고 전·현직 금감원 직원 및 국세청 공무원 비리를 적발한 것도 수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조 원대의 금융 비리가 이 정도 사람들만으로 가능했다고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검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아직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전남 신안군 개발사업 등 각종 정치성 특수목적법인(SPC)에 대한 수천억 원 규모의 대출금 가운데 사용처가 제대로 밝혀졌다고 볼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이 돈의 일부는 대주주들이 비자금으로 빼돌렸거나 정·관계 로비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

부산저축은행은 1997년 외환위기 전만 해도 제2금융권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미미한 존재였다. 그런 은행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3대 정권에 걸쳐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부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만큼 여야 정치권에 비호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로비스트 박태규 씨가 받아간 로비 자금 17억 원의 사용처에도 의문이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의 급성장 배경에 관한 비리는 밝혀낸 것이 없다. 그동안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부산저축은행 비리에 검찰 인사들도 관련됐다거나 과거 정부는 물론이고 현 정부 인사들도 관련돼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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