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권순활]정동영이 아니라 김종훈이 애국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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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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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한국과 미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한 이틀 후인 2007년 4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 한 회의실. 한미 FTA 협상 결과를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설명하러 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종훈 한국 측 수석대표가 정세균 당 의장과 악수하자 30여 명의 의원은 “수고 많았다”며 박수를 쳤다. 홍재형 의원은 김현종과 김종훈을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송영길 의원은 “열흘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갔다는데…”라며 격려했다.

노무현 김현종 김종훈의 ‘FTA 분투’

그해 3월 26일부터 4월 2일까지 이어진 한미 FTA 9차 협상은 막판까지 진통을 거듭했다. 당초 3월 31일 오전 7시였던 협상 시한은 팽팽한 신경전으로 4월 2일 새벽 1시로 늦춰졌다. 연장 협상도 결렬 위기까지 갔다가 오후 1시 극적 타결에 성공했다. 협상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일부 신문은 3월 31일 ‘한미 FTA 협상 타결’이란 오보(誤報)를 냈다가 ‘섣부른 타결 보도,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싣기도 했다.

4년 반 전 김현종과 함께 열린우리당 의원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던 김종훈은 글래디에이터(검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외 협상에서는 국익을 위해 언쟁이나 벼랑 끝 전술도 불사한다. 협상 기간에는 귀가하지 않고 식사를 거르는 일도 많다. 2007년 협상 때는 남편이 갈아입을 옷을 전하려고 매일 찾아온 부인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당시 동아일보에서 협상 기사를 다루는 주무부장(경제부장)이었던 필자는 밤을 새우며 취재한 후배 기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김현종 김종훈이 세계 최강국과의 협상에 얼마나 치열하게 임했는지를 실감했다. 두 사람을 강력히 지원한 노무현 대통령의 FTA 리더십도 빛났다.

김종훈은 2007년 8월부터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국의 대외통상 협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 김종훈에 대해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최근 “옷만 입은 이완용”이라고 매도했다. 한미 FTA를 체결한 노무현 정부에서 여당 의장, 장관, 대선 후보를 지낸 정동영은 “한미 FTA는 을사늑약보다 더 나쁜 나라 팔아먹기”라고 주장한다. 정동영의 표변과 궤변은 정치가 때로 인간을 얼마나 타락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추가될 만하다.

“우리는 개방형 통상 국가를 지향하는 만큼 미국과의 FTA가 불가피하다”는 발언 등 정동영이 노 정부 시절 한미 FTA에 대해 쏟아놓은 찬사들을 일일이 열거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완용과 을사늑약’ 운운하는 주장은 일부 극좌세력에 영합할지는 몰라도 훨씬 더 많은 국민에게 정치적 인간적으로 외면당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정동영은 다른 문제에서도 민주노동당에 가까운 경제관 안보관 대북관을 자주 드러낸다. 이명박 정권에 실망한 국민이라도 요즘 정동영의 행태를 보면서 ‘만약 정동영 정권이 탄생해 저런 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면 지금 나라꼴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정동영이 정권 잡았다면 어찌됐을까

미국 의회가 한미 FTA를 비준한 뒤 일본 언론은 미국 시장에서 자동차를 비롯한 일본산 제품이 한국산 제품에 밀리게 됐다고 우려했다. 한국과 일본이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실에서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다면 정동영 같은 정치인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의 국익을 위해 행동하는 셈이다. 개인의 실명(實名)을 들어 비판할 때 지나치게 거친 표현을 쓰는 것이 내키진 않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김종훈과 정동영 가운데 누가 더 친일파 정치인 이완용에 가까운 것일까.

정동영은 “한미 FTA는 애국이냐 매국이냐 갈림길에 선 중대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라면 김현종 김종훈 같은 협상 실무주역들은 물론이고 한미 FTA를 적극 추진했던 노무현도 매국노로 전락할 판이다. 처지가 바뀌면 말이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그것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다. 정동영이 아니라 김종훈이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의 장래에 더 기여하는 애국자라고 나는 확신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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