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포퓰리즘의 종말, 불타는 그리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1일 03시 00분


그리스 최대 공공노조와 민간노조가 48시간 총파업에 들어간 19일(현지 시간) 수도 아테네에서 10여만 명이 격렬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으로 경찰경비초소 등이 불탔고 국회의사당 주변은 시가전이 벌어진 듯했다. 정부청사 학교 병원 은행이 모두 문을 닫았고 아테네 국제공항의 항공편이 속속 취소됐다. 외국인 관광객은 관광지 입장도 못했고 청소노조 파업으로 각 도시는 20여 일째 쓰레기 대란을 겪고 있다.

그리스 노조와 시위대는 정부의 추가 긴축재정안에 반대하면서 “구제금융은 필요 없다”는 구호를 외친다. 정부 긴축안은 공무원을 줄이고 세금을 더 걷고 연금을 깎겠다는 내용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약속받은 구제금융을 계속 지원받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리스 정부는 빚을 갚지 못할 위기에 빠진 작년 5월 구제금융을 요청해 4년간 총 1100억 유로(약 173조 원)를 받기로 하고 지금까지 650억 유로를 받았다. EU는 긴축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에 EU 각국 국민이 낸 세금을 계속 지원할 명분이 없다. 그리스가 이달 6차분 구제금융 80억 유로를 받지 못하면 부도가 난다. 그리스 국민이 부도 국가의 국민이 되지 않으려면 내핍과 긴축을 거부해선 안 된다.

그리스의 긴축안은 19일 의회의 1차 투표에서 가까스로 통과됐고 20일 2차 투표도 통과하면 확정된다. 그리스의 긴축 의지가 확인되면 EU 정상들은 23일 회담에서 그리스의 빚을 깎아주는 회생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리스가 부도 위기에서 탈출할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그리 높지 않다. ‘빚 위의 복지’를 합작해낸 그리스 정치권과 국민이 도덕적 해이를 떨쳐버리지 못하면 구제금융이나 채무 재조정만으로는 재정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 총파업과 시위로는 상황을 악화시켜 재정 파탄을 재촉할 뿐이다. 이런 시위를 빈곤층의 저항으로 보면 큰 오산이다.

8월 방한했던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아테네대 교수는 “그리스는 복지 포퓰리즘과 과도한 규제로 경제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고 분석했다. 그리스 위기는 EU로 전염돼 지금은 세계 경제의 위협요소가 됐다. 한국은 그리스에 비하면 국가채무 수준은 양호하지만 증가속도가 빨라 안심할 수 없다. 고령화와 남북통일 대비 등 재정수요가 예상되는데도 정치권은 복지확충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재정능력 이상의 과도한 복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갈수록 높아져 앞으로 국가채무 관리가 제대로 될지 불안하기만 하다. 불타는 그리스는 ‘허리띠를 한번 풀면 다시 졸라매기 어렵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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