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담뱃값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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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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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고 등산에 열심인 사람도 정상에 오르면 유혹에 빠져든다. 단풍숲 스쳐온 소슬바람에 땀을 말리며 맑은 공기를 적절히 섞어 빨아들이는 담배 한 대는 ‘꿀맛’이다. 어느 의사의 말이다.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아, 이거 몸에 해로운데…’라고 자책하며 피우는 담배는 독(毒)이고, 뭔가를 열심히 해낸 뒤 뿌듯한 성취감에 ‘아, 정말 맛있어’라고 자족하며 피우는 담배는 약(藥)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한들 4000여 종의 독성물질을 내뿜는 담배가 약이 될 리 없다.

▷‘금연 전도사’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 등이 18일 ‘한국 담배 제조 및 매매금지 추진운동본부’를 결성했다. 담배를 만들지도, 팔지도 못하게 하기 위한 학술활동과 범국민 서명운동, 헌법소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점잖은 금연운동만으론 담배라는 ‘마약’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는 담배 제조 및 매매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도 입법 청원했다. 그러나 담배의 제조와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흡연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마약도 못 없애는 판에 담배를 불법화한다고 해서 지상에서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담배를 못 없애는 현실에서 흡연율을 낮추는 최강의 수단은 담뱃값 인상이다. 세계은행은 담뱃값을 10% 올리면 담배 수요가 선진국에선 4%, 개발도상국에선 8%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경고문구 삽입, 광고 제한, 금연구역 강화 등의 비가격 정책으로는 기대하기 힘든 효과다. 담뱃값 인상은 특히 청소년 흡연율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크다. 미국의 고교생 흡연율이 1995년 36%에서 2001년 25%로 하락한 주요인도 가격 인상이다.

▷담뱃값은 2005년 이후 6년째 2500원이다. 선진국의 반값도 안 된다. 담배 한 갑이 햄버거보다 싸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담뱃값 인상이 거론됐지만 비난 여론을 의식해 주저앉았다. 지난달 취임한 임채민 장관은 “담뱃값을 6000원으로 올려야 금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흡연자들은 담뱃값에서 왜 건강보험 부담금까지 거두냐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흡연 관련 질병이 늘어나면 건강보험 재정을 축낸다. 담뱃값 인상을 일반 물가 상승처럼 규제할 순 없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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