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희숙]보험약가 인하, 제약사 경쟁력 강화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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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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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
윤희숙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
건강보험은 국민이 낸 보험료를 모아 의료서비스와 약품을 구매한다. 그러니 공적인 재원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싸고 좋은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그런데 약품에 있어서는 그동안 같은 약이라도 천차만별의 가격을 유지하도록 정부가 가격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도와왔다. 시장에 일찍 진입한 제품에 높은 상한가를 책정하는 계단형 가격구조가 그것이다.

제약회사들이 복제약을 만들려 하지 않아 국민이 불편을 겪는다면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일찍 진입하는 제품의 가격을 높이 쳐주는 게 나름대로 이유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제약산업은 연구개발을 통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나라에서 만든 제품을 베낀 복제약을 만들어 팔면서 오리지널약의 특허가 만료되기를 기다려 수십 개의 복제약이 동시에 시장에 진입하는 구조다. 제약산업의 특성상 글로벌 기업에서 연구개발이 대부분의 비용을 차지하는 것과 달리 연구개발이 필요 없는 복제약으로 수익을 올릴 뿐 아니라 시장 진입시점에 따라 국가가 높은 가격을 보장해 수익을 몰아줬으니 편하게 영업을 해온 셈이다.

보건복지부가 계단형 가격구조를 폐지해 같은 복제약에 같은 상한가를 부여하려는 것은 아무리 독특한 사고구조를 가진 경제학자라도 반대하기 어려운 조치다. 보험약 가격을 내린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민이 맡긴 공적 재원으로 약품을 구매하는 이상 최대한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제도 운영주체의 당연한 임무다.

그런데 제약업계에서는 국내 제약기업을 죽이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제 제약기업이 글로벌시장에서 펄펄 나는 것을 바라는 국민은 없을 것이고, 보험료를 아끼기 위해 이들이 다 망하기를 바라는 국민도 없을 것이니 헷갈리는 주장이다. 열심히 투자하고 연구개발 노력을 하면서 경영 효율화에도 최선을 다하는 기업이 모두 망할 정도로 비합리적인 가격으로 후려치는 것을 어느 국민이 반길 것인가.

그러나 국내 제약기업의 상황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상장 제약사 매출액은 10년간 268% 증가했고 현재 영업이익률도 10.3% 수준으로 산업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이들 제약사의 연구개발비는 매출의 6.3%로 다국적 제약사의 3분의 1 수준이다. 반면 판매관리비 비중은 월등히 높다. 돈이 없어 연구개발 투자를 안 한다는 핑계가 무색할 정도로 부채구조는 안정적이다. 이름난 글로벌 제약기업의 부채비율은 100%를 훌쩍 넘는데, 우리나라 제약사 부채비율은 50% 수준으로 제조업 평균보다 낮다.

이러한 수치는 제약기업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보험약가가 그동안 지나치게 후했기 때문에 연구개발이나 투자 없이도 제약기업들이 호시절을 구가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260여 개 제약기업 중 영세기업이 대부분인데도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마저 이상스럽지 않은 것이다. 시장에 살아남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쏟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노력하지 않아도 번영하게끔 공적자금을 쏟아 붓는 것에 국민 누구라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보험약가 구조를 합리화하고 가격을 낮추려는 정부의 조치는 국민의 보험료를 절감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지만,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내 제약기업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윤희숙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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