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미국의 일본화, 세계의 일본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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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최근 ‘미국의 일본화’라는 논의가 유행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3년 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리먼브러더스 쇼크의 타격을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지원과 금융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대대적인 구조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해 일시적인 경기부양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주택시장 침체가 개인소비를 얼어붙게 했고 고용 사정 역시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일본화한 미국은 이제부터 ‘잃어버린 10년’을 겪게 될지 모른다.

미국의 일본화가 꼭 경제 분야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 내 정치 대립이 구조개혁을 가로막는 점도 닮았다. 사실 미국이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진 것은 금융시장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연방정부 정책에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보수 세력이 강하게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고용대책이나 공공사업 중심의 케인스적 경기대책은 국가채무의 팽창이 불가피하다. 시장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의회를 중심으로 원리주의적 반대가 계속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에서 시작돼 남유럽으로 퍼져가는 유럽의 국가 채무와 금융 불안도 문제다. 경제대국 독일이 재정 지원을 지속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돼온 유럽 경제통합의 톱니바퀴가 역회전할 우려가 높다. 유럽이 공동채권을 발행하는 등 재정통합의 수준을 높이지 않는 한 신용불안은 수습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역 내 이해관계와 정치문제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가 성장궤도에 오르지 않으면 재정위기는 수습되지 않는다. 그 출발점이 구조개혁이다.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당시 ‘성역 없는 구조개혁’에 매달렸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뒤를 이은 아베 신조 정권은 참의원 선거에서 구조개혁에 대한 유권자의 반감으로 대패해 구조개혁의 기회마저 놓쳤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침체는 신흥국, 특히 동아시아 경제에 대한 부담을 증대시키고 있다. 리먼 쇼크 당시 중국은 4조 위안이라는 거액의 경기자극책을 실시해 세계 경제를 침몰의 늪에서 구해냈다. 하지만 중국은 당시 대규모 경기부양의 부작용으로 인플레와 부동산 버블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이 경험한 버블 붕괴를 우려하는 비관론까지 나올 정도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의 후유증에 힘겨워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경제국이 구미 경제를 지탱하는 게 더는 불가능해지면 세계경제는 어떻게 될까. 일각에서는 ‘세계 대공황의 재현’을 우려한다. 1920년대 유럽 경제가 몰락했을 때 세계경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미국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대공황의 원인이었다는 학설이 맞다면 오늘날 구미 경제를 장기침체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노력이 최우선시돼야 할 것 같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은 지금부터라도 재정 재건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주요 20개국(G20) 등의 협력도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성장의 여력이 남아있는 아시아도 있다. 이 지역은 여전히 인프라 투자 수요가 왕성한 성장지역이다. ‘일본 한국 중국의 3국과 아세안+인도’가 경제통합을 추진해 적극적으로 구미 경제의 부담을 줄이는 데 나서야 할 것이다. 일본도 안이하게 재정 재건만을 목표로 할 게 아니라 아시아 경제통합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일본화’ 현상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경험이 결코 한 나라에만 국한된 특수한 현상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세계가 진지하게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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