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동근]‘설탕 관세율 인하’ 득실 제대로 따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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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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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농산물 가격이 특히 그렇다. 김치가 ‘금(金)치’가 되기도 하고 그 흔한 상추가 ‘삼겹살에 싸먹는 상추’로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부족하다 싶으면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공급 측 충격을 완화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기도 마찬가지다. 남는 전기를 미래 소비를 위해 축전(蓄電)할 수 있다면 수급 마찰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원당과 설탕’의 관계도 전기로 치면 ‘축전’과 유사하다. 설탕은 원당을 보관하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설탕은 원당의 공급 측 교란 요인을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서민생활 밀접 품목과 독과점 품목 등 총 40개 품목에 대한 기본관세율을 인하한다고 7일 입법예고했다. 휘발유 타이어 밀가루 설탕 등이 망라되어 있다. 물가 안정 및 국내산업 경쟁 촉진을 위해서란다. 기본관세율 인하는 그만큼 수입을 촉진해 물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며, 개방화라는 큰 흐름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입법예고를 들여다보면 ‘돌출되는’ 부분이 눈에 띈다. 설탕 관세율 인하가 그것이다. 기본관세율을 현행 35%에서 5%로 무려 ‘30%포인트’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40개 품목의 평균 인하폭 3.9%포인트의 7배를 넘는다. 이 정도면 특별한 주석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별도의 설명은 없다. 설탕이 ‘독과점 고착화 품목’으로 분류된 것에서 정책 의도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최종 소비재의 관세율 인하는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킨다. 하지만 조건이 붙는다. 덤핑 등 ‘불공정한’ 무역관행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설탕의 경우는 다르다. 세계 최대 사탕무 생산지인 유럽연합(EU)이 농민 보호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주면서 설탕을 덤핑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기준 EU 역내 설탕 가격은 t당 780달러인 데 반해 수출가격은 400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설탕에 높은 관세를 매기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설탕 관세율은 각각 51%, 70%다. EU도 수출 물량이 역내 시장에 되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85%의 높은 관세 장벽을 쌓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본관세율을 5%로 낮추겠다는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덤핑 설탕 수입으로 단기적으로 가격은 안정되겠지만 제당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장치산업 특성상 가동률을 높여야 원가 절감을 실현할 수 있다. 그동안 원당가격이 급등락했는데도 국내 설탕 값이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던 이유는 국내 제당산업이 설탕 공급의 ‘완충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완충지대가 사라지면 설탕가격의 변동성은 오히려 커지게 된다.

독과점 고착화도 예단에 가깝다. 2010년 국내 제당산업 총생산액은 약 1조3000억 원이고 총 생산규모는 135만 t이다. 그중 36만 t을 수출하고 있다. ‘생산을 제한해 가격을 올렸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과점구조하의 경쟁이 오히려 치열할 수도 있다. 올해 상반기 제당업계 평균 영업이익률 2.3%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설탕의 관세율 인하가 소비자물가를 낮출 것이란 기대는 과장된 것이다. 설탕이 소비자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할뿐더러 설령 설탕가격이 인하된다고 하더라도 가공식품 가격이 낮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최근 원당시장은 반복되는 기상이변으로 공급 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 바이오에탄올 사용량 증가와 국제 원당시장의 투기세력 가세로 ‘가격 변동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은 관세율 인하를 논할 상황이 아니다. 관세율 인하라는 ‘하이킥’은 제당산업을 걷어차는 것이다. 물가 안정에 함몰돼 관세율 인하가 가져올 파괴적 효과를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릇 정책은 합목적적이어야 한다. 정책은 ‘과학’이기 때문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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