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태원]책사(策士)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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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의 사상적 기반과 태조 이성계의 통치 철학을 제시한 정도전(1342∼1398)은 조선 왕조의 설계자로 불린다. 조선의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는 작업을 총감독했고 조선경국전을 지어 통치 규범을 공고히 했다. 그는 주군(主君)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했다. 조선조 태조는 재임 7년 동안 절대 권력을 누리는 데 그쳤으나 정도전은 조선 왕조 518년 동안 조선의 생각을 지배했다. 후세에 미친 영향력은 정도전이 훨씬 컸다.

▷군웅이 할거하던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각국의 제후에게 정책을 조언하고 전략을 제시했던 사람들을 책사(策士)라고 부른다.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의 유방을 보필했던 장량이 대표적인 책사다. 군사전략가로 더 유명한 제갈량 역시 책사로 분류할 수 있다. 조선시대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세조로 추대한 공신인 한명회(1415∼1487)는 종종 책사가 아닌 모사(謀士)로 불린다. 모사에는 얕은꾀와 잔재주 그리고 인륜도덕이 결여된 계략을 냈다는 부정적 의미가 들어 있다.

▷235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 정치는 책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부관으로 연방헌법의 사상적 기반을 제시하고 경제정책의 틀을 잡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통해 미국 역사의 새로운 장을 만든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선임고문에게 붙여진 ‘최고전략가’라는 칭호는 책사의 미국식 표현이다. 미국을 ‘라이트 네이션(right nation·우파의 나라)’으로 개념화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성공시키며 공화당 영구지배 프로젝트를 가동했던 칼 로브는 보수 진영의 대표 책사다.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정치적으로 조언하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에게는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 패배의 아픈 추억이 있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복심(腹心)을 자부했지만 결과가 나빴다. 안 원장은 그런 윤 전 장관을 ‘멘토’라 부르면서도 “제 멘토는 300명 정도”라고 했다. 반(反)한나라당 선언을 위한 ‘팽(烹)’이거나 일시적 전략적 거리두기일 수도 있다. 세계사에 남은 뛰어난 책사들은 우선 대사(大事)를 성공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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