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오세훈 물러났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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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개표 불발에 따라 사전에 공언한 대로 어제 사퇴했다. 이에 앞서 주민투표 당일과 이튿날인 24, 25일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실시한 2017년(차차기) 대통령선거 여론조사에서 그는 15.4%의 지지율로 1위에 올랐다. 2위를 10%포인트 가깝게 앞섰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에 관한 서울시민의 선택을 물었던 주민투표에서 패했지만 복지포퓰리즘 정치와 벌인 싸움이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인 오세훈’이 반(反)포퓰리즘의 아이콘으로 부활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주민투표를 성공시키지 못함으로써 당장은 쓰디쓴 좌절을 맛보았다. 주민투표 발의에서 투표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한나라당 및 범보수층 유권자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이들을 결속시키지 못한 한계도 드러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에서도 발목을 잡는 세력이 적지 않은 가운데 그는 ‘원칙 있는 선별 복지’를 관철하려 한 정치인으로 각인되는 소득이 있었다. 이번 투표 불발을 빌미로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 복지포퓰리즘이 더 기승을 부릴 경우 국가적 후유증이 심각해질 우려가 적지 않다. 국민이 뒤늦게나마 복지포퓰리즘의 폐해를 체감하고 오 전 시장 같은 정치인을 찾을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는 복지지출을 무작정 늘리다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과잉 복지의 재앙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민주당은 선거 과정에서 선심성 복지정책을 남발했으나 재정난으로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되자 공식 사과하고 철회했지만 국민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미국과 일본은 최근 재정악화로 국가신용등급이 내려앉았다. 이런 상황이 결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오 전 시장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過程)도 중요하다며 “저의 사퇴를 계기로 과잉 복지에 대한 토론이 더욱 치열하고 심도 있게 전개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 시장의 퇴진으로 두 달 뒤에 치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물론이고 내년 4월 총선, 12월 대선에서도 복지 문제는 주요 화두가 될 것이다.

야권은 주민투표 무산을 계기로 이른바 ‘3+1(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반값등록금)’ 무상복지 시리즈를 본격 추진할 태세다. 하지만 주민투표 직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 단계적 무상급식 지지가 55.6%, 전면적 무상급식 지지가 38.1%로 나왔다. 야권은 승리감에 도취해 실현하기도 힘든 복지 공약을 남발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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