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용준]유료방송 매체별 심의기준 달리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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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케이블TV를 필두로 다채널 유료방송이 시작된 지 20년이 되어간다. 유료방송은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창작프로그램을 제공해 방송산업의 발전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현재 전국을 휩쓸고 있는 오디션 열풍도 유료방송에서 비롯된 것이다. 케이블TV의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는 천편일률적인 오락프로그램 속에서 참신한 포맷을 선보였다.

주지하다시피 ‘지상파방송은 공공성 위주의 고화질·고품격 방송, 유료방송은 시장원리를 위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방송’으로 제도화돼 있다. 이원적 방송제도에 따라 방송법 32조(방송의 공정성 및 공공성 심의)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5조(심의의 기본원칙)는 ‘매체별 채널별 특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선언적 규정일 뿐 세부적인 기준은 없다. 이로 인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유료방송을 지상파방송과 같은 ‘유익하고 건전한’ 잣대로만 규제하고 있다.

1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치적인 인터넷 게시물이나 시사교양프로그램에 지상파의 잣대를 일방적으로 적용한 반면 5월부터 업무를 시작한 2기 위원회는 유료방송 오락프로에도 지상파의 잣대를 전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공의 자산인 전파를 이용해 불특정 대중을 상대하는 무료 보편적인 방송과 특정 시청자를 타깃으로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공하는 유료방송이 같은 잣대 아래 놓여 있다. 일례로 ‘허본좌’로 불리는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가 2009년 8, 9월 출연한 프로들이 잇달아 중징계를 받을 때 1기 위원회는 지상파와 유료방송을 같은 수준으로 제재했다. 허 총재가 출연한 유료방송은 일반인과 다른 독특한 캐릭터, 이른바 ‘화성인’이 출연하는 프로였음에도 징계를 면치 못했다.

2기 위원회의 표정은 더욱 근엄하다. 위원회는 지난달 7일 출연진의 고성과 반말, 욕설을 문제 삼아 케이블 채널의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과징금 부과라는 최고 수위의 징계를 내렸다. 또 다른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욕설을 효과음으로 가려 처리했는데도 같은 달 14일 ‘시청자에 대한 사과’와 ‘관계자 징계’라는 법정 제재를 받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출연진의 과장된 언어와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날 회의에서 한 위원은 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에선 통상적인 것이라며 중징계에 반대했지만 소수 의견에 그쳤다. 그 대신 위원회는 “케이블 채널에 제재의 실효가 없다”며 앞으로도 과징금 부과가 잦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에서는 유료방송이 지상파방송을 ‘재탕’해 볼거리가 없다고 비판한다. 반대로 너무 선정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유료방송은 이런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6000∼7000원에 불과한 시청요금과 원가에도 못 미치는 광고비로 지상파 같은 고품격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차라리 지상파 프로그램을 싸게 구입해 유통하는 것이 자구책이다. 케이블 채널 엠넷에서 국민적인 선풍을 불러일으켰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적자를 보는 것이 유료방송의 현실이다. 유료방송이 어느 정도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것은 불가피하다. 그나마 외국에 비해 매우 건전한 편이다.

다소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유료방송이 어렵게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을 지상파와 같이 높은 수준으로 제재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불합리하고 글로벌 콘텐츠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 정책목표와도 상충된다. 위원회는 입법 취지에 따라 매체와 채널 특성, 그리고 영향력에 따른 차별적인 심의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또 대상에 맞는 중점 심의 방향을 사전에 공표해 피규제자의 규제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위원회도 ‘자의적 심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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