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하]수명 100세가 축복이 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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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0∼6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따른 국민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3.3%는 90∼100세 이상까지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고 답했다. 축복이라는 답변은 28.7%에 그쳤다. 청장년층을 중심으로 조사한 것이어서 현재 노인들의 삶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청장년층이 느끼는 생활의 어려움과 노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노년에 빈곤-질병-고독 ‘3苦’직면

노령이 되면 일반적으로 빈곤 질병 고독이라는 삼고(三苦)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적 안정은 사람마다 원하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고, 건강은 사망하기 직전까지 자립적인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관리 가능해야 하며, 자존감이 상실될 정도의 외로운 상태로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이 90세 넘게 살 수 있는 장수사회는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복지선진국조차 고령사회에 진입한 것이 몇십 년에 불과하고 이웃나라 일본은 세계 최장수 사회이지만 고독사 무연사회 등 부족한 소득과 부실한 건강 그리고 외로움 속에서 노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기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의 현실은 더 심각하다. 일단 노후소득이 불안하다. 사회보장제도로 국민연금이 있지만 충실하게 가입해도 연금으로 100만 원 받기가 쉽지 않다. 일하고 싶지만 일할 자리도 만만치 않다. 젊었을 때 피땀 흘려 모아놓았다고 해도 달랑 집 한 채가 전 재산이고 변변한 금융자산도 없다. 자녀들 학비와 결혼비용 대느라 미처 자신의 노후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건강한 노후도 자신할 수 없다. 노인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질병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80%를 넘는다.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암과 같은 중대질환도 증가하지만 고혈압 당뇨병 관절염 등 만성질환도 급속히 늘어난다. 오래 사는 것을 두렵게 만드는 치매 중풍과 같은 노인성 질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평균수명 연장을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인생을 행복하지 않게 생각하는 팍팍한 삶 자체가 근본적 문제다. 이는 단순한 물질적 만족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사회는 괄목할 경제성장으로 절대적 빈곤은 극복했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 속에서 일등이 아니면 불행한 사회가 조성돼 있고 패자를 보듬어 줄 사회적 시스템도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고령사회 진행 과정에서 세대 간 갈등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복지시스템 촘촘하게 재설계해야

장수사회가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소득과 건강을 보장하는 복지시스템부터 촘촘하게 재설계해야 한다. 일단 노후가 되면 최소한의 노후소득은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험료를 내야만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기초노령연금제가 보완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다져나가야 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이 가능하도록 예방적 건강증진 대책의 강화와 함께 노인성 만성질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노인이 활력 있는 삶을 살도록 근로와 봉사 등 사회 참여와 네트워크를 넓혀 나가야 한다. 그리고 물질적 만족보다는 정신적 내면적 문화적 추구가 행복이 되는 삶의 철학의 전환도 중요하다.

한층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경제사회 패러다임이 인간 중심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장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이 목적이 되고 그러한 행복이 지속 가능하도록 국가와 사회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재구축해야 미래가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구체적인 설렘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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