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민노당에 손 내민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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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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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요즘 야권 통합 논의의 한복판에 서 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밀고 당기는 통합 움직임에 이 대표의 발언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야권 내부에선 이 대표의 주변 세력을 주목한다. 이 대표를 띄워 당권파의 구심점을 만든 것은 경기 성남권 노동 학생 운동권이 주축인 경기 동부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당내에선 이 대표의 주요 메시지가 경기 동부그룹의 내부 조율을 거쳐 나오는 것으로 본다.

경기 동부그룹의 핵심 인사들은 유시민 참여당 대표와 오랜 인연이 있다. 특히 이들은 작년 6월 경기도지사 선거의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유시민 후보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 대표와 유 대표가 ‘찰떡 공조’를 과시하는 배경엔 이 같은 기류가 깔려 있다. 진보진영의 한 인사는 “상대적으로 반미(反美) 대중운동에 집중한 경기 동부그룹은 2002년 대선 때 (미군 장갑차 교통사고로 사망한) 효순 미선 양 사건을 적극 이슈화했다”며 “이들은 향후 민주당에 맞서 통합논의를 주도하기 위해 참여당과의 통합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더 물러날 곳이 없다. 작년 경기도지사 선거와 4·27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하자 ‘유시민 정치’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는 요즘 민노당 당권파와 손잡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절박감도 배어 있다. 진보진영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무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대해 사과하는 ‘굴욕’까지 감수할 정도다.

민노당 일부와 진보신당 인사들은 여전히 냉랭하다. 그의 ‘사과정치’에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지난날 민노당을 향해 쏘아붙였던 독설이 부메랑이 되고 있다.

“득표력이 매우 높은 극소수의 후보를 제외하면 지역구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얻는 표는 모두 죽은 표가 된다.” “민주노동당은 성역이 아닐뿐더러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상대해야 하는 경쟁상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2004년 4월 12, 13일 자신의 홈페이지)

“민노당과 연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커서 차라리 한나라당과 연합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 많다.”(2005년 5월 3일 라디오 인터뷰)

민노당 권영길 의원은 민노-참여당 통합에 반대하면서 내년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쳤다. 진보신당은 “참여당은 통합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친노(親盧)그룹 일각에서는 노 정부 때 체결된 한미 FTA에 대해 사과한 유 대표를 겨냥해 “정치적 기회주의”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연말 당권을 노리는 민주당 인사들은 민노-참여당 통합 논의를 보면서 유불리 계산에 분주하다.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린 유 대표의 ‘변신’을 단순히 정치적 유연성으로 치부하기엔 한도를 넘었다. 거창한 대의(大義)보다는 한나라당에 맞선다는 명분 아래 정략적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바쁘다. 지금의 한나라당을 만든 3당 합당은 그래도 김영삼 같은 거목이 국민의 눈길을 끌었지만 지금의 민노-참여당 통합 논의에는 도토리만 즐비하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각 정파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는 ‘무지개연합’식 통합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비가 그친 뒤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무지개라면 허무할 뿐이다. 야권이 색깔을 불문하고 손만 잡으면 ‘반MB(이명박 대통령)’ 표가 모두 통합야당으로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계주의적 오류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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