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조조정 안 하니 부실기업만 늘어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일 03시 00분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경제사령탑이었던 강경식 전 부총리는 한보사태 이후 부도 공포증에 시달리던 김영삼 대통령이 “어떻게든 부도만은 내지 말라”고 수시로 지시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이후 기아자동차를 원칙대로 부도처리하지 못하고 끌고 가다가 외환위기의 빌미를 주고 말았다고 강 전 부총리는 후회했다. 어느 대통령, 장관, 은행장도 부도기업이 늘어나는 것을 반기지 않겠지만 경쟁력이 없는 한계기업들을 정부 지원으로 연명시키면 부작용이 훨씬 크다.

한국은행은 2009년 기준으로 12월 결산 비금융 중소기업 가운데 잠재부실기업이 3479개로 전체의 7.7%에 이른다고 밝혔다. 2002년 3.8%의 두 배 수준이다. 잠재부실기업은 3년 연속으로 영업이익이 금융비용에 못 미치거나 2년 연속 매출액이 20% 이상 감소한 기업이다. 서비스업 중 음식숙박업(30%) 부동산 및 임대업(27%) 운수업(22%), 제조업에서는 섬유(14%) 전자부품 및 컴퓨터(12%)에 잠재부실기업이 많다. 외환위기 이후 소자본 저(低)기술로 창업한 음식점, 정보기술(IT)붐 때 창업했다가 과당경쟁으로 수익성이 나빠진 컴퓨터 관련업체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영업적자나 금융부채에 허덕여 상당수가 퇴출될 운명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정부는 실업자 발생, 노사 갈등, 연쇄부도를 우려해 한계기업의 퇴출을 꺼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쳤을 때 정부는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한다면서도 회생을 위한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잠재부실기업이 더 늘어났다. 정부는 동반성장 정책을 펼 때 성장여력과 재무건전성 등으로 옥석(玉石)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 한계기업에 자금이 흘러가게 해서는 안 된다.

미흡한 구조조정으로 중소기업 부실채권 비율이 2007년 0.99%에서 올해 3.23%로 껑충 뛰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부실 중소기업이 정상적인 중소기업의 고용 및 투자를 억제하는 ‘발목잡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자생력 없는 좀비 기업들 때문에 신규 중소기업의 진입이 억제되고 부실기업과 정상기업 간에 소모적 과당경쟁이 빚어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은 중소기업 신용보증 지원을 줄이고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잠재성장력을 훼손시키는 잠재부실기업의 퇴출을 권고했다. 내년 선거철이 되면 기업 구조조정이 더 어려워지는 만큼 퇴출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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