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대중]당뇨병 경증질환 분류, 돈없는 환자만 피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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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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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아주대 의대 교수 내과 전문의
김대중 아주대 의대 교수 내과 전문의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관의 역할 재조정의 일환으로 소위 ‘경증질환 외래진료비의 본인 부담률 차등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증질환으로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 외래에서 처방받는 경우 약제비의 본인 부담률을 현행 30%에서 각각 40%, 50%로 올려 의원에서 진료받도록 유도하려는 정책이다. 지나치게 상급의료기관을 선호하는 관행을 개선하려는 정책 방안으로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다.

하지만 대상 질환을 정하는 과정에서 인슐린-비의존형 당뇨병(2형 당뇨병)을 의원에서 많이 진료하는 질환이라는 근거로 경증질환으로 분류한 것은 심각한 혼란과 환자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2형 당뇨병 환자의 70%는 의원에서 혈당 관리를 하고 나머지는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상급기관에서 진료하는 당뇨병 환자 중에도 특별한 합병증이 없고 약물치료를 하지 않을 정도로 경미하거나 경구약제 1, 2종으로 혈당 관리가 잘되는 비교적 ‘경증당뇨병’ 환자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한두 가지의 합병증을 동반하고 있다. 그 예로 눈합병증(망막병증)으로 안과 치료를 받거나 콩팥합병증으로 정밀검사를 정기적으로 하는 환자가 많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등 심장 합병증으로 순환기내과에서 치료 중이거나 뇌중풍으로 신경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그런 합병증이 없더라도 의원에서 혈당 조절이 잘되지 않아 상급의료기관을 찾는 환자들도 있다.

현행 제도가 시행될 경우 이 모든 당뇨병 환자가 상급의료기관에서 처방을 받는다는 이유로 약제비 중 30%를 본인이 부담하던 것을 40∼50%로 올려야 한다. 예를 들어 약국에서 10만 원을 지불하던 환자는 9월부터는 15만 원 정도를 내야 한다. 조정협의체에서 혼수와 산증이 동반한 경우를 중증으로 제외했다고 하지만 이런 경우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으로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경우이고 전체 당뇨병 환자의 0.1%도 되지 않는다.

9월 1일 제도 시행을 앞두고 가장 우려되는 것은 환자의 경제 수준에 따른 차별이다. 정부가 의도한 순기능적인 환자 이동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당뇨병 환자는 상급의료기관에서 계속 진료를 받고 저소득층이나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은 노인 환자들의 경우만 약제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원으로 이동하는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합병증의 집중 관리가 필요함에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의원에 감으로써 합병증을 키우고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의원의 의사가 당뇨병 치료를 잘하지 못한다는 게 아니다. 당뇨병 합병증 관리는 의사 단독으로 될 일이 아니고 간호사 및 영양사와의 협력이 이루어져야 하며 여러 장비를 이용한 검사가 필요한데 이런 시설과 인력은 상급의료기관에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의원과 상급의료기관 간에 협조가 잘 이뤄지고 있는 지역에서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상급의료기관에 의뢰해 집중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의원으로 보내 진료하는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즉, 당뇨병 환자는 의료기관 간 협조관계를 통해 최선의 치료를 받아야 하며 상병코드를 기준으로 기계적으로 분류할 대상은 아니다.

실명의 가장 큰 원인이 당뇨병이고 말기신부전으로 투석 치료나 이식수술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당뇨병이다. 하지 절단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 국민의 사망 원인 가운데 5위를 차지하는 당뇨병을 경증질환으로 분류하려는 정부의 방침은 당뇨병 치료에 들어가는 약제비 부담을 환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의료재정의 안정화를 꾀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300만 명에 육박하는 당뇨병 환자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는 이번 정책은 철회돼야 한다.

김대중 아주대 의대 교수 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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