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평창의 세 번째 눈물

  • Array
  • 입력 2011년 7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나라 이름에 도시란 뜻의 시티만 붙이면 수도가 되는 중앙아메리카의 과테말라시티. 4년 전 지구 반대편 이곳에서 다 큰 어른들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2014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 한승수 위원장과 당시 김진선 강원도지사. 각각 고희와 환갑을 넘긴 두 사람은 현지에서 임차한 유치위 사무실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넋을 놓고 있었다. 수장들이 이 지경이니 유치위는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이를 보고 울컥하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나. 마감을 해야 되는데. “왜 졌다고 보십니까?” “푸틴이 그렇게 셉니까?” “이제 어떡합니까?” “세 번째 도전을 할 계획입니까?” 무례한 질문은 계속됐고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어쨌든 인터뷰 기사는 무사히 들어갔다. 그날 기자실에는 급하게 송고를 하는 와중에도 눈시울을 붉히거나 소리 죽여 우는 사람이 많았다.

평창은 1차 투표에서 38표를 얻어 러시아 소치(34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25표)를 앞섰지만 과반수에는 모자랐고 결선 투표에서 소치에 47-51로 역전패했다. 평창에 비해 인프라와 인지도에서 절대 약세였던 소치는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현장에 와 영향력을 행사했다. 평창은 2010년 겨울올림픽 유치전 때도 2003년 체코 프라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1차 투표에서 캐나다 밴쿠버와 잘츠부르크를 51-40-16으로 압도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밴쿠버에 53-56으로 고배를 마셨다. 패인으로는 이어 열린 IOC 부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김운용 당시 대한체육회장이 지목돼 곤욕을 치렀다. ‘두 개의 파이를 한 국가에 동시에 주지 않는다’는 IOC의 불문율에 따라 주위에선 그의 출마를 진작부터 말려왔다.

기자들 역시 사람이다. 국제대회 취재를 갔을 때 좋은 성적표가 나오면 덩달아 신이 나게 마련이다. 기자는 그런 점에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순수 아마추어로 구성된 1997년 야구 대표팀은 사상 최약체로 평가됐지만 대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당시 멤버였던 김동주 조인성은 두산과 LG의 중심타자가 됐고 김선우 서재응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올림픽과 아시아경기 등 동행 취재한 종합 국제대회에서도 한국은 항상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투표에선 유난히 약했다. 200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IOC 총회가 시발점이었다. 김운용 위원은 동양인 최초의 IOC 위원장에 도전했지만 현 위원장인 자크 로게를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어 두 번에 걸친 평창의 좌절을 목격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비롯해 1986년 서울, 1999년 강원, 2002년 부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유치 등 각종 선거에서 동방불패였던 한국 스포츠가 세 번 당한 패배를 현장에서 겪은 셈이다.

한국 시간으로 6일 밤 12시 남아공 더반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나선 평창의 세 번째 운명이 결정된다. 본보 황태훈 차장은 1일 유치위 본진과 함께 대한민국 전세기를 타고 현지 취재에 나선다. 황 차장은 기자와는 달리 2007년 쿠웨이트시티에서 열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유치전에서 승전보를 보내온 행운아다. 닷새 후 그가 기사를 쓰면서 유치 관계자들과 함께 흘릴 눈물이 좌절이 아닌 환희의 눈물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