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로저 코언]‘디폴트 위기’ 그리스를 어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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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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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그리스는 예로부터 유럽 정신이 태동한 땅이었다. 역사적으로 서구 문명의 요람이란 표현은 당연한 찬사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현재 유럽연합(EU)은 이 민주주의의 발상지를 품에 안을 여력이 없어 보인다.

과거의 영광은 아름답지만 현실엔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 코소보나 아테네를 보면 분명하다. 유럽은 그리스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스가 재정 기준에 미달해 가입에 실패했던 1999년을 기억하는가. 사실 2001년 회원국이 됐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러나 EU는 (통합이란 명분 아래) 그리스가 갖고 있던 불안요소를 눈감아 버렸다.

그리스는 20세기 초반부터 터키와의 갈등이나 오랜 군사독재, 좌우익으로 갈라진 내전을 줄기차게 겪었다.

저술가 브루스 클라크는 “그리스는 국가의 번영보다 (개개인의) 혈연을 더 중시하는 잔재가 살아남은 사회”라고 말했다. 그리스가 EU 회원국이 된다고 갑자기 유럽 전체를 위해 움직일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스가 다른 유럽국들을 자기 나라의 엄청난 빚을 대신 떠안아줄 대상으로 생각했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EU는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리스의 곪은 상처에 약을 발라줬다. EU의 큰 선행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스 거리는 시위대로 가득하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정부가 경기를 회복시킬 돈이 없어 공공산업을 축소하고 매각하려는 것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빈민과 실업자들은 실패한 정부 정책과 책임을 회피하는 부유층, 잔인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야기한 피해를 자신들이 떠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분노는 이해할 만하다. 실제로 자유무역이 추구하는 ‘국경 없는 질서’는 이윤에 따라 시장을 재편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더 돈을 버는 측면이 있다. 때문에 곳곳에서 대중의 반발이 일어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런 파업과 폭력 시위가 유럽 통합이라는 위대한 성취를 멍들게 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투자자들은 떠나고, 유럽 각국도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터키는 EU에 등을 돌렸고, 독일은 이상과 멀어진 현실을 깨달았다. 미국은 유럽이 군사적으로도 무력해졌다고 힐난한다. 그리스와 스페인 시민들은 다른 유럽국들을 사기꾼으로 여긴다.

이렇게 상황이 나빠진 것은 본질적으로 EU가 갖는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정치적 통합 없이 서로 다른 정부가 관할하는 경제만 합친다는 건 역사에 비춰 봐도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이런 식의 통합은 그리스나 스페인처럼 재정이 취약한 국가들이 계속 빚만 쌓여갈 뿐 어떤 경쟁력도 키울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했다. 이는 아프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스는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안타깝지만 현재의 혼돈이나 일부 유럽 국가의 냉소적 태도로 보건대, 그리스는 결국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것이다. 그나마 더 심각한 혼란을 겪지 않으면 다행일 뿐 이를 피할 묘수는 없다. EU나 그리스 정부는 어떻게든 현재의 실패를 만회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그건 그리스가 앞으로도 계속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악수(惡手)가 될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리스를 EU 회원국으로 가입시킨 건 성급한 일이었다. 그리스의 화려한 역사적 전통을 아무리 되뇌어도 현실은 냉혹하다. 거짓말은 눈덩이와 같다. 굴리면 굴릴수록 점점 커질 뿐이다. EU가 아무리 구제 노력에 힘을 쏟아도 진실을 숨길 순 없다.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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