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송우혜]사법제도 이전에 법조인 양식이 문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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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우리의 파란 많은 지난 역사에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말은 특히 군사정권 시대에 사람들 입에 많이 회자됐던 유명한 경구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 평소에는 그런 곳에 대한 희원(希願)이 별로 절실하지 않은데, 소송을 한다든지 하는 특별한 일이 생기면 갑자기 절박해진다.

그간 사법제도 개혁 문제를 두고 설왕설래가 요란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흡사 제도가 제대로 개혁되지 않아서 문제인 것처럼 비치고 있다. 그러나 일반 시민의 처지에서 보면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고 반듯한 사명감을 갖고 이 사회를 이끌고 나아가는가. 거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에 관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살아오면서 소송을 두 번 해 보았다. 예전에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씨가 당선했을 무렵에 그쪽 캠프의 선거 전략에 따라 내 글이 80% 정도 표절돼 제3자의 저작물로 소개되면서 악용된 것을 발견하고 저작권법 위반으로 인한 위자료 청구소송을 진행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에 대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응징하겠다는 뜻에서 제기한 소송이었다.

공직자 不義하면 正義사회 헛꿈

사건의 성격만 보면 지려고 해야 질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1심에서 지고 2심에서도 졌다. 합의부인 2심의 재판장은 법조계에서 매우 이름이 높은 유명한 분이었는데,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문을 내놓았다.

판결문의 요지는 “타 월간지 인물기사 내용의 60∼70%를 표절했다고 해도 저작자의 공표권, 성명 표시권, 동일성 유지권이 침해됐다고 보기는 어려워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는 청구 못한다. 가사 저작인격권이 침해되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정신적 손해를 입게 됐다는 원고의 주장 역시 이유 없어서 인정할 수 없다”(서울민사지방법원 제5부 88나29391, 1989. 4. 19. 선고)는 것이었다.

그의 판시 내용도 납득할 수 없었다. ‘성명 표시권을 침해했다고 하려면 저작자의 저작물을 그대로 게재하면서 저작자의 표시를 변경하거나 은닉해야 하는데, 본건은 원 저작물을 똑같이 게재한 것이 아니니 성명 표시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다. 동일성 유지권이 침해됐다고 하려면 저작자의 저작물을 게재하면서 동의 없이 그 내용을 수정 변경해야 하는 바, 원 저작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했으니 저작자의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한 것도 아니다.’ 그런 식이었다.

이 사건은 이런 판시 내용 때문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일간지 사회면과 법률신문에 크게 보도됐고, 판결문 전문이 법률신문에 게재되었다. 상대방은 2심까지는 승리했지만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내가 승소하면서 모든 게 바로잡혔다. 그래도 그렇게 이상한 판결을 내린 2심 재판장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는 재판을 맡아 반짝거리며 크게 활동했다.

최근에는 필자의 부친이 세운 학교법인의 설립자 확인 소송을 수행했다. 부친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초에 피란민과 이재민 가정의 아이들이 가난으로 공부를 중단하는 것을 보고 학교법인을 설립하고 중학교를 세워 교육했다. 그런데 설립자인 부친으로부터 4대째인 교장이 돌연 자신이 ‘학교법인 설립자’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중등학교 설립자 가문에 특혜를 주어 교장의 경우 정년에 구애받지 않고 종신직으로 근무하게 했다는데 그런 혜택을 노린 억지로 보였다. 학교 안의 모든 서류에 제4대 교장을 설립자로 표기하는 것도 모자라서 교육청 서류의 기존 설립자 이름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치기해 놓았다. 그래서 소송이 벌어졌다. 학교 교사들도 올바른 학교 역사 세우기를 위해 나섰다.

판사가 똑바르면 세상 환해져

그런데 이번 판사는 소송 진행 태도가 매우 바람직했다. 진술을 잘 들어주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묻기도 했다. 판사는 결국 “제4대 교장을 설립자라고 표기하면 안 된다”고 명확하게 판시해 재판을 끝냈다. 꼭 내 재판을 이기게 해주어서가 아니다.

바른 양식을 갖고 재판에 임하는 판사가 있으면 세상살이가 편편하고 환해지고 유쾌해진다. 사법개혁을 한다지만 개혁에 따른 각종 제약을 미꾸라지처럼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법조인도 많을 것이다. 우리들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소명감이 있어야만 사법개혁은 성공한다. 모든 부정의와 고통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원하는 것, 거기서부터 비롯된다. 오래된 성채와 같은 말,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이정표와 같은 말, ‘정의’에 대해 새삼 생각해본다.

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swoohy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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