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부석사의 파도와 忠孝堂 고방의 주련

  • Array
  • 입력 2011년 6월 5일 20시 00분


코멘트
황호택 논설실장
황호택 논설실장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은 벼슬을 마치고 향리로 내려와 초가삼간에서 살다가 별세했다. 지금의 충효당(忠孝堂)은 서애가 세상을 뜬 뒤 손자와 제자들이 그의 학덕을 기려 지은 집이다. 충효당 내당(內堂) 고방(광) 문에 ‘충어내(充於內) 적어외(積於外)’라는 주련(柱聯)이 붙어 있었다. 고방 안을 채우되 바깥사람들을 잘 먹여 덕을 쌓으라는 뜻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담겨 있는 주련이다.

한중 교류협회(회장 김한규 전 총무처장관)를 따라 영주의 부석사와 소수서원, 안동의 도산서원 병산서원 하회마을을 1박 2일로 돌아봤다.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전 이화여대총장·사학)이 저술을 위한 강의를 곁들여 쏠쏠한 역사 공부가 됐다. 충효당의 14대 종부 최소희 할머니(84)는 출타 중이었다. 내당 대청마루에 앉아 안주인이 챙겨놓고 간 음료를 마시면서 역사문화 강좌를 들었다.

최 씨는 경주 최부잣집 둘째 딸로 도지사 며느리 자리를 마다하고 충효당 종부(宗婦)로 들어왔다. 시집 올 때 하회마을 300가구에 이바지를 돌렸다. 경북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종가(宗家)만 120여 곳에 이른다. 1년에 10여 차례 제사를 지내는 종부의 삶을 이어갈 규수 감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경북 영주의 달성 서씨 종가에는 베트남 며느리가 들어왔다.

班常이 나누고 배려하는 문화

하회마을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이 사이좋게 어깨를 비비고 서 있다. 상민과 하인들도 1년 중 하루만은 탈로 얼굴을 가리고 억눌린 감정과 불만을 해소할 수 있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묵인 속에서 진행된 ‘야자타임’이다. 하회마을의 서민은 단순히 양반을 조롱하는 수준이 아니라 삶의 애환을 예술성 높은 굿판으로 승화시켰다. 하회탈은 국보 121호이고 탈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69호다.

양반들은 음력 7월 초순이나 중순 무렵에 하회마을을 돌아가는 낙동강에서 배를 타고 줄불놀이를 즐겼다. 부용대에서 강 건너 만송정에 이르는 공중에 동아줄을 매달아놓고 뽕나무 뿌리로 만든 숯 봉지를 태워 허공을 은은하게 밝히고 음주가무와 시회(詩會)가 벌어졌다. 이 위원장은 “고품격의 양반문화가 민중의 지지를 받아 보존될 수 있었던 데는 반상(班常) 사이에 나눔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현판은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왔다가 남겨놓은 글씨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눈을 들어 보면 소백산 산등성이들이 무량수전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온다. 부석사 절집들의 지붕은 반듯한 세로줄이고, 소백산 산등성이들은 붓으로 휘갈긴 가로줄이다. 종선과 횡선, 인공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다. 범종루에서 안양문(安養門)을 올려다보면 공포가 여섯 부처로 보인다. 무량수전의 붉고 노란 단청이 햇빛에 반사돼 부처 모양의 공포를 통해 비춰지는 건축의 요술이다. 세상 만물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불교철학을 담고 있다.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 담장 밖에서 오래된 소나무들이 키 재기를 한다. 이 위원장은 “소나무들이 공부를 하고 싶어 담을 넘어 서원 안을 들여다보는 형상이어서 학자수(學者樹)라 불린다”고 해설했다. 필자가 “소나무들이 햇빛을 많이 받아 광합성(光合成)의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나무가 없는 서원 마당 쪽으로 기우는 현상”이라고 토를 달았다. 학자수라는 시적 상상력과 숲의 생태에 관한 식물학은 서로 배척하지 않고 우리의 사유(思惟)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한국 최초의 서원이다. 서원 옆으로 흐르는 죽계천(竹溪川)은 세심(洗心)의 의미를 지녔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개울이 모여 하천이 되고, 강이 되고, 종국에는 바다와 만난다. 배울수록 자신을 낮추고 넓은 세계를 향해 나가라고 물이 가르쳐준다.

9개 서원 세계문화유산으로

김병일 국학진흥원장(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선비는 글과 도덕을 갖추고 의리와 범절에 따라 행동하며 충(忠) 효(孝) 서(恕)를 솔선수범한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선비문화가 여성과 서얼(庶孼), 상민(常民)을 차별하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위계를 매겨 산업을 낮춰보고, 무(武)를 경시하고 실용보다 의례에 치중한 폐단도 컸다. 그러나 실력을 기르고 겸손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며, 부모 스승을 존중하는 예절은 오늘에도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소수서원을 비롯해 안동의 도산서원 병산서원, 필암서원(장성) 무성서원(정읍) 옥산서원(경주) 도동서원(달성) 남계서원(함양) 돈암서원(논산) 등 9개 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 한국인의 삶은 서구문명 속에 파묻혀 있지만 선현들이 남긴 정신문화는 소중히 간직해야 할 우리의 뿌리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