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영화계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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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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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은 이념과 철학을 달리하는 상황에서 함께 일하기 어려우니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명박 정권의 첫 문화행정 수장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취임 직후 물갈이론을 내세웠다. 문화계 요직을 장악한 좌파 인사들은 스스로 물러나라는 압박이었다. 하지만 해당 인사들은 “문화예술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것이냐”며 ‘기관장 임기’를 무기로 반격했다. 임기 중간에 해임된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이 부당 해임 판결을 받아내자 유 장관은 “그런 뜻이 아니다”라며 물러섰다.

▷독립영화 심사과정의 외압 시비 때문에 지난해 11월 물러난 조희문 전 영화진흥위원장(인하대 교수)이 ‘영화계 좌파 장악론’을 제기했다. 조 교수는 계간 ‘시대정신’ 여름호에 기고한 글에서 ‘영화계는 문화예술계에서 좌파가 주도권을 장악한 대표적인 분야’라고 주장했다. 스타급 감독이나 배우 시나리오작가 음악가 제작자 기획자 가운데 좌파 성향을 보이는 사례가 많고, 민주노동당 가입을 과시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좌파 영화인들이 어떤 정책적 사안을 공론화해서 여론 조작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영화계-시민단체-언론-정치권-언론-영화계’로 이어지는 조직적 순환 고리를 통해 여론을 확산시켜 간다고 조 교수는 설명했다.

▷국내 영화계 좌파는 1920년대 출발해 해방정국을 거쳐 1980년대 북한영화 상영 운동 등을 통해 이어졌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은 영화계 좌파가 비주류에서 주류 세력으로 자리 잡는 결정적 시기였다는 게 조 교수의 분석이다. 김대중 정권은 영화법을 영화진흥법 체제로, 영화진흥공사를 영화진흥위원회로, 공연윤리위원회를 영상물등급위원회로 개편해 완전히 다른 환경을 만들었다. 영화감독협회는 “노무현 정권에서 권력과 결탁한 영화인들이 영화진흥위원회를 장악하고 3000억 원의 예산을 일방적으로 집행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노당 당원인 박찬욱 봉준호 영화감독은 “영화와 정치적 지향은 별개”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좌파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집단적 힘으로 작용하고 이를 견제하고 대응할 중심이 없다는 조 교수의 우려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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