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규형]국사학계에 ‘현대사’ 독점권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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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필자가 사학과를 다닐 당시 한국사 분야에선 현대사를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았다. 동(同)시대는 역사연구의 대상이 아니라는 묘한 논리 때문이었다. 수업과 연구 범위도 대개 구한말로 끝났다. 반면 서양사 동양사는 냉전시대의 여러 주제에 대한 현대사 강의 및 연구가 제한적이나마 진행됐다. 나는 살고 있는 동시대에 대한 공부가 더 하고 싶어 정치외교학과 사회학과 경제학과의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유학을 가서 본 외국 역사학계에선 현대사(contemporary history)가 중요한 분야 중 하나로 폭넓고 심도 깊게 연구되고 있었다.

한국사에서도 뒤늦게 근현대사 연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으니, 국내 국사학계에서 첫 현대사 분야 박사가 나온 것은 1993년에 이르러서다. 이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당연히 연구 축적의 기간이 짧았다. 더군다나 현대로 관심분야를 넓히면서 근대와 전근대를 바라봤던 기존의 민족지상주의와 역사발전단계론 역사결정론을 기계적으로 현대사에 대입하는 우(愚)를 범하는 경향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국가들을 매혹시킨 폐쇄적 마오쩌둥주의의 영향이 컸다.

탈(脫)근대주의자들은 아예 민족주의와 근대지향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통일시대를 앞둔 우리에게 아직도 필요하다. 단지 “열린 민족주의”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공화주의와 결합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국사를 배우면 국가관과 (맹목적이지 않은) 건전한 애국심이 함양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민족적 자긍심은 높아졌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국가적 자긍심은 적어졌다. 그런 면에서 민족지상주의는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가 많았다.

학문 경계 허물고 종합적 역사로

국사학에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을 때 다른 학문에선 꾸준히 현대사 연구가 진행되고 축적됐다. 정치사 외교사 경제사 국문학사 사회사 문화사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국사학계 일부에선 이런 연구 성과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갑자기 ‘현대사’가 자신들만의 고유 영역이라 얘기하며 배타적 권한을 주장했다. 이것은 마치 국문학에 큰 기여를 한 양주동 이양하 윤동주가 영문학도였기에 국문학의 범주에 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학문융합이 대세인 지금 학문 간 벽을 쌓으며 고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타당치 못하다. 재미있는 점은 일부 국사학자들이 숭앙하는 브루스 커밍스가 역사학과를 다닌 적도, 역사학 학위를 받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심리학사, 정치학 박사였다. 그런데 공산권 문서가 공개되기 이전에는 그의 연구를 혁신적인 것으로 인정해 사학과에서 가르치고 역사가로 대접했던 것이다. 이런 경우는 많다. 바이마르 연구의 권위자인 제프리 허프는 사회학 박사지만 독일 현대사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필자의 은사인 냉전사의 대가 존 루이스 개디스는 역사학 박사로서 현재 예일대의 사학과와 정치학과에서 동시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학문 간 경계가 낮고 교류가 활발하다는 방증이다.

한국의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타 학문에 대한 존중과 이해는 적고 자신들만의 담 쌓기는 견고하게 진행된다.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국사 동양사 서양사라는 임의적인 구분은 아예 고정됐다. 역사학 내부는 물론이고 국사학계 내부에서도 벽이 존재한다. 세계사는 광범위한 문명 교류의 전개과정이었기에, 세계체제가 구성되는 근현대는 물론이고 고대 중세에도 이런 구분 방법은 타당성이 없다. 이런 낡은 체제를 가지고는 제대로 된 역사를 공부할 수가 없다. 차제에 역사학으로의 통합 필요성이 절실하고, 국사학과만 있는 대학들은 사학과로 확대 개편을 해야만 한다.

굴곡진 시대, 공정하게 바라봐야

역사교육과도 마찬가지다. 역시 사범학교라는 일제강점기의 시스템이 존속된 경우다. 국사학과 역사교육학은 그동안 한국 교육에 기여한 바가 컸다. 그러나 이제는 이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사범대의 틀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역사학과와 역사교육과,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 수학과와 수학교육과가 학부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 대신 학부에서 교직과목을 이수하든가 교육대학원에서 중등교원을 키워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아예 사범대가 없는 연세대와 몇 년 전 유사학과를 통합하며 사학과와 역사교육과 등을 통합한 성균관대의 경우를 벤치마킹해야 할 때가 왔다.

어제 한국현대사학회가 창립됐다. 새로 출범하는 한국현대사학회는 기존의 낡은 학문구분을 버리고 종합적인 역사로서의 현대사를 추구한다. 굴곡진 한국의 현대를 공정하게 바라보고 이뤄낸 성취와 입은 상처를 같이 다루며 세계사에서 한국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노력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gkahng@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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