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대지진과 일본인의 의식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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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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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3·11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7주가 지났다. 그동안 일본 국민은 유례없는 재난에 차분하고 용감하게 대응해 왔다. 특히 이재민들이 보여준 자제력과 인내심은 존경할 만하다. 가족을 잃은 시련 앞에서도 이웃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이번 피해를 키운 것은 지진 후의 초대형 쓰나미였다. 그것만 없었더라면 그 많은 사람과 그 많은 공공시설, 공장, 주택이 휩쓸려 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원자력발전소의 피해도 이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부흥을 위한 작업이 본격화하고 새로운 청사진이 제시되고 있지만 피해지는 여전히 부흥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가까스로 교통수단이 정상화됐으나 생산수단이 복구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부품 생산은 차질을 빚고 전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또 주택 복구는 아직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이재민을 위한 임시주택이 겨우 지어지고 있을 정도다.

원전 사고 처리가 불투명한 것도 문제다. 아직 피해 상황을 확인 중이고 방사성 물질이 더는 확산 유출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쿄전력이 밝힌 잠정계획에 따르면 냉각장치 복구까지는 6∼9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 기간에 대규모 여진을 동반한 쓰나미가 다시 원전을 덮치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 일본 국민이 보여준 용기와는 별개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에는 적잖은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위기대응 준비가 허술했고, 예상 밖의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문제는 초동 대응에 실패한 이후에도 이어졌다. (정부와 원전당국은) 지휘권을 통일해 냉정하게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정보 공개를 철저하게 하고 외국의 지원을 적절하게 받아들일 여유를 잃어버렸다. 리더십의 혼란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신뢰받지 못하는 내각이라고 해도 이렇게 큰 재해에 직면하면 여야 모두 현 내각을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되고, 행정 책임자도 여야나 정국을 초월한 위기대응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대통령이 발휘한 강력한 리더십이 부러울 따름이다.

일본도 결국 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것이다. 지난달 말 일본은행이 발표한 경제전망리포트에 따르면 3월 광공업생산지수는 전월보다 15% 줄어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올해 회계연도의 성장전망치도 0.6%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가을에는 부품 공급망이 복구되고 전력 공급도 개선되면서 차츰 기운을 되찾을 것이다. 대재해의 교훈을 살려 수년 내에 일본은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경제체제를 갖출 것이다.

이번 대재해는 일본인이 국제협력의 중요성이나 글로벌화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이 고립감을 심화시켜 국수적으로 흐를 것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의 선의를 접하고 또 스스로 국력의 한계를 자각하면서, 일본인의 대외의식 변화는 깊은 곳에서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다.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많은 일본인은 각자가 안전하고 윤택하게 생활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 좀 더 열린 국가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한관계도 마찬가지다. 대지진 당시, 일한 양국이 영토문제를 분리해 인도적 관점에서 협력했다면 양국 관계는 획기적으로 개선됐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쌍방 모두 그런 여유와 도량을 갖지 못했고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조건 아래 있는 일본과 한국은 원자력 안전 분야를 포함해 하나씩 상호협력을 확대해갈 것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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