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덕환]국과위에 재량주고 뛰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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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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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과학커뮤니케이션
과학기술계의 오랜 염원을 담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드디어 돛을 올렸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잘못을 국과위를 통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과학기술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국정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났던 과학기술을 제자리로 돌려놓음으로써 진정한 선진국 진입을 향한 창조형 과학기술 투자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예산권 놓고 기싸움

그런데 새로 출범하는 국과위의 모습이 많이 실망스럽다. 진정한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우선 실질적인 예산 배분·조정권부터 불안하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장관이 드러내놓고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히 예산 편성 작업만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셈이 될 수도 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성과 평가권도 온전하게 확보하지 못했다. 평가법 개정이 치열한 정쟁에 휩싸여 버린 마당에 재정부에서 넘어오는 인력과 서둘러 조직을 개편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의존하면 된다는 변명은 옹색한 것이다. 국과위가 법으로 보장받지 못한 평가권을 제대로 행사할 가능성은 없다.

국과위의 규모와 인력도 실망스럽다. 규모는 120명으로 줄었고, 사무처는 힘센 부처의 나눠먹기로 채워졌다. 고위직의 인력 적체 해소를 위해 과학기술 분야 전문성을 갖춘 민간위원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묵살된 것이다. 30명으로 줄어든 3년 임기의 계약직 민간 인력은 국과위 산하 위원회에서 관료들의 심부름이나 하게 될 모양이다. 이런 인력구조는 청년실업 해소라면 몰라도 국과위의 막중한 임무 수행에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결국 과학기술계는 과거 과학기술부 인맥을 해체하고, 관료들을 위한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애를 쓴 셈이 되고 말았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 개편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를 교육과학기술부와 지경부로 이원화하면서 내세웠던 ‘기초’와 ‘원천’의 구분은 처음부터 무의미한 말장난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출연연은 명분 없는 기관장 갈아 치우기와 끝없는 개편 소문에 시달려 왔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중추기관인 출연연을 더 이상 이렇게 방치해 둘 수는 없다.

과학기술계와 산업계 모두의 존경을 받는 원로까지 나서 어렵게 마련한 민간위원회의 개편안을 즉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출연연을 본격적으로 되살리기 위한 모든 책임을 국과위에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하루도 미룰 수 없는 중차대한 과제다.

도 넘은 부처 이기주의 심각

국과위가 출범도 하기 전에 다리를 절게 돼버린 이유는 명백하다. 국가의 미래보다 부처의 이익을 더 강조하는 부처 이기주의가 도를 넘어선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정략적 이해관계를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가릴 이유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정치권도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달려 있는 과학기술을 더는 부처 이기주의나 정략적 이해관계에 맡겨 둘 수 없다.

이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위헌 가능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국과위의 위원장을 맡겠다고 했던 대통령이 다시 한 번 확실한 정책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지근에서 대통령을 보좌했던 청와대 수석 출신 장관의 국과위 반대 발언은 놀라운 것이었다. 혹시라도 우리가 대통령의 진심을 잘못 읽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 발언이었다. 자칫 임기 말에나 볼 수 있는 권력누수(레임덕) 현상이 벌써 시작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반쪽으로 출범하는 국과위를 보는 과학기술계의 마음은 착잡하다. 과학기술은 화려한 말이나 예산 투입만으로 발전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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