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남윤서]허접한 토론회에 ‘울며 겨자먹기’로 참가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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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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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교육복지부 기자
남윤서 교육복지부 기자
경남 양산에 사는 고교 2학년 A 양은 서울에서 청소년 모의 국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지난달 초 인터넷으로 알았다. 외국어고에 다니는 친구가 모의 유엔이나 청소년 토론회에 나가면서 비교과 영역의 스펙을 관리하는 모습을 봤던 터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주최 측은 “국회의원들이 참여해 공정하게 심사한다, 지방 학생을 위해 숙박시설을 준비했다. 명문대 학생이 멘터 역할을 해 준다”고 설명했다. A 양은 참가를 결심한 뒤 23만 원을 보냈다. 그러나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2월 18, 19일 열린 대회는 기대와 달랐다. 국회의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참가자 100여 명이 6개 상임위원회로 나뉘어 토론할 때 성인으로 보이는 심사위원은 없었다. 상임위원장 자리에 앉은 고교생들이 1∼3등을 뽑았을 뿐이다.

멘터 역할을 한다던 학생은 주최 측의 설명과 달리 명문대 학생이 아니었다. 다른 참가자와 얘기를 나누다가 어떤 학생은 15만 원을 내고 참가한 사실을 알고 A 양은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역시 엉망이었다. 외국인 매니저가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고장 난 화장실을 써야 했다. A 양은 “밤늦게까지 외국인 남자들이 돌아다녀서 여학생끼리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고 말했다.

토론회는 대학생과 고교생이 올해 초에 만든 민간단체가 주최했다. 이번 행사 외에는 다른 활동 실적이 없었다. 요즘 흔한 홈페이지도 갖고 있지 않았다. 주최 측은 항의가 잇따르자 “심사는 공정하게 진행됐다. 모집인원이 예상보다 적어서 단체신청 시 할인해 줬다”고만 해명했다.

내용이 부실한 ‘스펙용 대회’는 이뿐 아니다. 지난해 열린 어느 모의 법정 대회도 전문가 없이 학생끼리 수상자를 심사했다가 참가자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민간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참여했다가 또래 학생이 발급한 인증서를 받고 어이가 없었다는 학생도 있다.

정체 모를 단체가 주관하는 대회가 계속 생기고, 참가자가 몰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입에서 입학사정관제나 특기자 전형에 지원하려면 비교과 활동에 참가했거나 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대학은 “입학사정관제는 스펙을 보는 게 아니라 잠재력을 본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입학사정관제 도입 5년째인 지금도 그 말을 온전히 믿는 것 같지 않다. A 양은 “스펙을 만들려고 대회 참가에 급급해서 나처럼 피해를 보는 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정부와 대학,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남윤서 교육복지부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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