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원의, 의원에 의한, 의원을 위한 政資法 개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7일 03시 00분


여야 국회의원들이 초당적(超黨的)으로 일치단결해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정치자금법을 개정했다. 이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입법로비 의혹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회부된 한나라당 권경석 조진형 유정현 의원, 민주당 최규식 강기정 의원,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 등 6명은 무죄 판결과 효과가 같은 면소(免訴) 판결을 받을 판이다.

국회의원들이 진짜 땀 흘려 해야 할 일은 민생과 경제와 교육을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며, 안보를 튼튼히 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입법 활동이다. 여야 의원들은 정작 민생과 안보 입법은 소홀히 하면서 국회의원의 집단이익을 위한 정자법 개정안에서는 얼굴색도 붉히지 않고 한통속이 됐다. 청목회 사건은 청원경찰들의 봉급과 정년 등 처우를 개선하는 법을 만들어달라고 의원 38명에게 회원들 명의로 후원금을 준 사건이다. 아무리 정치자금이 아쉽기로서니 청원경찰이 모아온 돈을 받았단 말인가.

이 개정안이 법으로 확정되면 의원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이익단체들의 로비자금을 챙길 수 있게 된다. 개정안은 정자법(政資法) 31조 2항의 ‘단체와 관련된 자금’을 ‘단체의 자금’으로 바꿨다. 기부금이 ‘단체의 자금’이란 사실이 명확할 때만 처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특정 이익단체가 소속 회원들의 이름으로 후원금을 쪼개서 기부한다면 입법로비를 처벌할 근거가 없어진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되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10여 건의 다른 불법후원금 사건도 처벌 근거가 사라져 수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

여야는 현행 정자법 31조가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정자법 31조에 대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낸 법안을 정치권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 멋대로 뜯어고치는 월권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행안위 표결에 참여한 의원 22명 중 민주당 최규식 의원은 청목회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상태인데도 찬성표를 던졌다. 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불참했어야 한다. 한나라당 김무성,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사전에 행안위 처리에 합의했다. 개정안 처리 안건을 외부에 알리지도 않은 채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이 황급히 처리한 것은 떳떳하지 않은 법안처리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공은 국회 법사위로 넘어갔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본회의에 앞서 법사위에서 정자법 개정안을 폐기시켜야 옳다. 여야 정치권이 이 법안을 계속 밀고나가 본회의를 통과시킨다면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을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