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철희]‘평양성’의 三國과 대한민국 3軍

  • Array
  • 입력 2011년 3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철희 정치부 차장
이철희 정치부 차장
얼마 전 영화 ‘평양성’을 보면서 실컷 웃었다. 삼국통일과 전쟁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코믹사극으로 변신시킨 첫 번째 요소는 걸쭉한 경상도와 전라도, 이북 사투리였다. 이준익 감독은 사투리로 대변되는 삼국의 분열을 통해 여러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으리라. 전작인 ‘황산벌’에선 “머시기할 때꺼정 거시기한다”는 계백 장군의 지시를 신라군이 정탐해내고도 뜻풀이를 못해 쩔쩔맨다.

삼국시대의 언어는 어땠을까. 중국 문헌의 단편적인 기록뿐이어서 해석이 엇갈리지만 삼국 사이엔 단순히 사투리의 문제가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았다는 게 유력한 해석인 듯하다. 특히 고구려와 신라 사이엔 말이 달라 백제인의 통역이 필요했다고 한다. 백제의 지배층 언어는 고구려어, 피지배층 언어는 신라어와 비슷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4일 육해공 사관학교 졸업생을 포함한 초임 장교들의 임관식을 TV로 보면서 이 영화를 떠올렸다. 이날 행사는 ‘합동성 강화’가 군의 핵심 화두가 되면서 마련된 창군 이래 최초의 합동임관식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전군이 유기적으로 하늘과 바다, 육지에서 통합작전을 수행하는 합동성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견상 군대만큼이나 균질한 조직도 없다. 각 군은 제복 색깔과 계급장 표시, ‘충성’ ‘필승’ 등의 경례구호가 다르고, 오후 1시를 육·공군은 ‘십삼 시’로, 해군은 ‘열세 시’로 다르게 말하지만 국민들에겐 모두가 같은 ‘대한민국 국군’이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3군의 의식과 문화는 제각각이고 저마다 타군을 폄훼하기 일쑤다. “멋만 부리는 해·공군이 전략·전술을 알기나 하느냐”며 무시하는 육군과 “한국에선 육군 다음에 예비군, 그 다음이 구세군, 그리고 해·공군”이라며 자조하는 해·공군 사이엔 불신의 골이 깊다. 긴밀한 합동작전이 필수적인 현대전에서 군 간의 경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한국군 최대의 적은 ‘군복 색깔이 다른 아군’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 3군 합동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 해전을 모르는 군 지휘부는 수군을 억지로 출정시켜 사지에 몰아넣었다. 도원수 권율은 통제사 원균을 불러 곤장을 치기도 했다.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군 개혁의 요체도 합동성 강화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개혁 프로그램은 각 군의 뿌리 깊은 이기주의 탓에 용두사미가 되곤 했다.

이명박 정부는 상부지휘구조 개편 등 과감한 개혁을 군에 요구하고 있다. 한때 3군 사관학교 통합도 검토했지만 각 군의 거센 저항에 부닥쳐 포기했다. 지역 합동군사령부로 창설하려던 ‘서북해역사령부’가 해병대만의 ‘서북도서방어사령부’로 축소된 것도 이 때문이다.

임기 4년차의 이명박 정부에서 과감한 군 개혁은 쉽지 않은 과제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일단 군 내부의 저항을 무마해 국회로 넘기더라도 공론화 과정을 거치려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그렇다고 다음 정부로 넘길 일은 아니다.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합동성 강화의 핵심은 타군에 대한 이해에 있다. 우선 이미 국방개혁법에 규정돼 있는 합참 내 3군 보직 비율(2 대 1 대 1)을 지켜 해·공군의 피해의식을 없애고 사관학교 교육 통합, 타군 교류 근무 및 작전 체험 등을 통해 군 간의 장벽을 허무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영국군은 육해공 장교들에게 서로 역할을 바꿔 워게임(war game)까지 시킨다고 한다.

이철희 정치부 차장 klim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