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함재봉]핵과 국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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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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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 전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은 ‘남이 핵 가져야 북이 협상한다’(1월 10일자), ‘한국의 핵무기, 논의할 가치도 없다는 말인가’(2월 7일자)라는 칼럼을 연달아 기고하면서 지금까지 금기시돼 있던 주제의 물꼬를 텄다. 워낙 민감한 주제라 논쟁이 스러지는 듯하던 차에 정몽준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 중에 ‘북한이 모든 핵을 폐기할 때까지 전술핵을 다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펴면서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게리 세이모어 미국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이 “한국 정부가 재배치를 공식 요구한다면 미국은 ‘예스’라고 말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화답하고, 중앙일보가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 미국에 요구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으면서 핵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는 ‘핵 비확산’ 관련 한미일 3자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필자에게 이는 좀 더 포괄적인 차원에서 핵과 우리 국익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는 계기를 제공해 줬다.

핵에 관한 한 한국은 거의 모든 측면에 걸쳐 깊숙이 관련돼 있다. 우선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상의 대표적 ‘불량 국가’인 북한이 핵실험을 일삼고 최근에는 고농축우라늄 시설을 마치 자랑하듯 공개하고 핵전쟁 위협 발언을 일삼는 상황에서 한국은 최대 안보위기에 직면해 있다.

핵무장 부추기는 언론도 있어

동시에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국은 미국의 ‘확장 억제력’, 소위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다.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는 대신 미국의 힘에 의존하는 안보전략인 동시에 핵 확산을 막아보려는 전 지구적 노력에 동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한미확장억제정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한미동맹이 보다 심화되는 계기도 마련되고 있다.

반면 수입에너지 의존도가 거의 100%에 육박하는 한국에 핵은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20기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으며 전력의 45%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는 2016년까지 8개의 원자력발전소를 추가 건설함으로써 에너지 자립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려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원자력은 대표적인 친환경 에너지로서 녹색성장에도 기여한다.

원자력은 국내용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상품’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430기의 원전이 추가 건설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장 규모만 1200조 원에 이른다. 원자력 설계와 시공, 운영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과 노하우, 경쟁력을 갖춘 한국에 이는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부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의 성공적인 수주 이후 후속 수주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다.

끝으로 2012년 한국은 제2차 핵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2010년 미국이 첫 번째 회의를 개최한 이후 핵 비보유국인 한국이 두 번째 정상회의를 유치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향상된 우리의 국제적인 위상을 보여준다. 핵 문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이어 한국이 ‘국제거버넌스’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처럼 핵 문제는 안보와 동맹, 에너지와 녹색성장, 수출과 세계경쟁력, 그리고 국제거버넌스 등 실로 다방면에 걸쳐 우리의 국익과 직결돼 있다. 문제는 핵 이슈의 다양한 측면이 때로는 상호 모순되고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체적인 핵무장 문제다. 핵무장 논의는 자칫 우리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쌓아온 핵 비확산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림으로써 핵의 평화적인 사용과 수출을 통한 국제경쟁력 확보와 이윤 창출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핵 비확산이란 이슈를 매개로 국제거버넌스에 적극 참여하려는 우리의 시도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국제사회서 신뢰 잃을 수도

더구나 2014년 한국은 미국과 한미 원자력협정을 재협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핵 비확산 의지가 조금이라도 의심받게 된다면 우리 원자력 산업의 핵심인 한미 원자력협정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문제는 그렇다고 북이 핵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중국이 이를 두둔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상황에서 무작정 북한과 중국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북핵 폐기를 목표로 시작한 6자회담이 지리멸렬한 가운데 미국의 북핵 폐기 의지마저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 폭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미국의 전술 핵무기의 한시적 재배치는 북핵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이 사라지고 있는 최악의 안보 상황에서 우리의 핵 비확산 의지를 손상시키지 않고 국제사회의 신의를 지키면서 우리의 안보를 보장하는 최고의 협상카드인 동시에 최선의 안보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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