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상호]北도발 ‘설마’에 당해놓고 또 ‘설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북한군의 특이동향은 없다.”

지난해 3월 초 한미 연합군사연습 ‘키 리졸브’ 개시 직전 군 당국은 언론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 며칠 전 북한은 키 리졸브 연습을 ‘북침 핵전쟁 책동’이라고 비난하며 군 최고사령부 명의의 전투동원태세를 발령했다.

당시 군 내부에선 “북한이 매년 한미 군사훈련을 앞두고 써 먹는 협박 공세로 이번에도 말로 그칠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부 당국도 북핵 6자회담 재개 논의와 남북대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깨뜨리는 도박을 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로부터 3주 뒤 서해에서 천안함 폭침사건이 일어나 우리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한의 기습에 허를 찔린 사실을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한미 연합훈련을 위해 미군 전력이 한반도에 증원된 상황에서 북한이 감히 도발하겠느냐는 지나친 자신감에서 나온 방심이 원인이었다.

실제로 북한은 매년 한미 연합훈련 때마다 ‘불벼락’이니 ‘섬멸적 타격’이니 하면서 갖은 협박과 엄포를 계속했지만 군사적 도발은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군 일각에선 북한의 협박과 엄포를 ‘겁 많은 개가 짖는 소리’ 정도로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천안함 폭침은 우리 군의 이 같은 빈틈을 정확히 꿰뚫은 기습 도발이었다. 또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도 얼마든지 군사적 모험에 나설 만큼 무모하고 비합리적인 집단임을 입증하는 계기였다.

28일부터 시작되는 키 리졸브 훈련을 앞두고 군 일각에선 ‘북한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도발하겠느냐’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올해 들어 북한의 잇단 대화 제의 등 미묘한 변화를 볼 때 북한이 이미 유화 국면으로 방향을 정한 만큼 무모한 도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군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추가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2009년 키 리졸브 훈련 당시 북한이 동해상을 지나는 남측 민항기의 안전을 위협한 전례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동해안에 밀집한 원자력발전소 등 핵심 기간시설에 대한 북한의 기습 테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한반도 안보현실에서 설마 하는 방심은 이제 금물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앞둔 군이 적에게 한 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고, 도발에는 단호히 응징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는 본분을 다시 되새겨보기 바란다.

윤상호 정치부 ysh100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