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만우]또다른 ‘너트와 드라이버’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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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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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
최근 발생한 광명역 KTX 탈선과 영광원전 5호기 고장이 빠져나간 너트와 잘못 들어간 드라이버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KTX 탈선은 선로전환기 케이블 교체 후 너트 한 개가 빠져 생긴 에러 사인을 잘못 처리한 결과이며, 원전 고장은 모터 안에 들어 있던 30cm 길이의 드라이버 끝이 회전자 코일을 건드려 발생했다고 한다. 영광원전 5호기는 2002년 초 모터를 설치한 후 분해한 일이 없기 때문에 문제의 드라이버는 설치 당시 시운전 단계에서 잘못 들어간 것이 분명해 9년간 16차례 고장의 원인을 이제야 찾아낸 셈이다.

KTX 탈선 사고는 볼트와 너트를 조이는 중요한 작업을 한 사람 손에 맡기고 2차 확인 없이 끝낸 점을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또 에러 사인에 대한 완전한 원인 규명 없이 직진만 가능하도록 임시방편을 쓰면서 이를 분명하게 전파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원전 고장의 경우 시운전 시 투입된 모든 공구에 대한 회수 확인 절차의 불비와 고장 원인 조사의 실패를 지적할 수 있다.

열차나 원전 같은 시스템 운영이나 기업 및 공공기관 업무관리에 있어 오작동에 의한 낭패를 막으려면 사전적 내부통제와 사후적 운영감사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중요 업무는 두 사람 이상이 독립적으로 확인하고 치명적 오류가 발생하면 다음 단계에서 이를 인식해 제어하도록 해야 한다. 사후감사는 독립적인 지위에 있는 전문가가 주기적으로 실시하도록 하고 지적사항에 대한 시정조치를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미국인의 자존심을 크게 깎아내린 엔론 사태도 업무분장에 따른 내부통제와 사후감사의 불비로 인해 발생했다. 거대 에너지그룹 엔론이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 제프리 스킬링을 최고경영자로 영입하면서 적절한 견제장치 없이 회계와 자금관리까지 총괄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내부통제가 마비돼 공명심에 불타 저지른 회계부정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금융업은 리스크가 특히 높아 금융회사와 감독당국 모두 열차나 원전 운영에 못지않은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200년 전통의 베어링은행을 파산시킨 닉 리슨의 파생상품 사고도 주가지수가 박스권을 벗어나 폭등이나 폭락할 경우 초래될 막대한 손실위험에 대한 내부통제의 너트를 조이지 않은 결과다. 리슨이 ‘몰빵’했던 일본 닛케이주가 연계 파생상품이 1995년 고베 지진에 따른 주가 폭락으로 1조7000억 원의 손실을 내 역사 깊은 은행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우리 경제의 뇌관인 저축은행 사태도 구조적 결함으로 너트가 풀리고 일촉즉발의 드라이버를 시스템에 품고 있는 상황이다. 저축은행 예금에 대해 은행별로 1인당 5000만 원 한도로 동일하게 보호하다 보니 영업허가 자체가 이권이 됐고 대형화할 유인이 없었다. 은행별 예금자보호 한도의 최대 활용을 위한 소형 계열사 분리 경영이 연쇄부실을 유발하고 있다. 대전저축은행이 부실로 자진 영업정지를 신청하자 모회사인 부산저축은행에도 구제역 발생 인근 지역 도살처분이나 다름없는 동반 영업정지가 내려졌고 남은 3개 계열사도 예금 인출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예금사고에 대처하기 위한 수리용 드라이버 성격의 예금자보호제도가 저축은행 시스템을 교란시켜 대형화를 막는 장애요인이 됐다. 기존 예금은 현행 제도를 적용하고 신규 예금에 대해서는 자본규모와 건전성에 따른 차등적 보호한도를 적용해 저축은행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 저축은행 사태는 원전 모터 안에 있는 드라이버를 찾아내는 원인 규명보다는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가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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