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물 수능’은 결국 한국 교육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8일 03시 00분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 11월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쉽게 출제하겠다고 밝혔다. 설동근 교과부 차관은 “EBS 수능 교재와 강의만으로 수능에 대비할 수 있도록 난도를 낮추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능이 어렵게 출제됐다는 반응이 나오자 올해에는 훨씬 쉬운 ‘물 수능’으로 바꾸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런 방침에는 사교육 수요를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수능을 쉽게 낸다고 사교육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쉬운 수능은 상위권 학생에 대한 변별력을 떨어뜨린다. 주요 대학들은 수능만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으므로 논술이나 심층면접의 반영 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다. 수능을 준비하기 위한 사교육 수요도 갑자기 줄어들지는 않는다. ‘물 수능’은 전체적인 사교육 시장을 확대할 공산이 크다.

사교육비가 한 해 10% 정도씩 계속 증가해오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줄어들었다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부담은 여전한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각종 수단을 동원해 사교육 수요를 막으려는 뜻은 이해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교육의 본말(本末)을 뒤집어서는 안 된다. 수능은 대학입시에서 국가 차원의 유일한 시험이다. 이를 턱없이 쉽게 내는 것은 정부가 엘리트 인재 육성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포기하는 일과 같다. 교육당국은 수능의 영역별 만점자 비율을 응시자의 1% 정도 나오도록 하겠다고 한다. 만점자가 양산되면 최상위권 학생들은 공부에 최선을 다할 의욕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고교 시절 길러내야 할 잠재력을 제때 키우지 못하면 이들 세대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연천 서울대 총장은 지난해 취임식에서 “우수한 신입생을 선발하는 데 연연할 것이 아니라 탁월한 졸업생을 배출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공계 신입생이 꼭 알아야 할 수학 과학 실력이 크게 부족하다면 아무리 최고의 대학이라도 탁월한 졸업생으로 키우기 어렵다.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핵심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면 개인과 국가 모두의 손실이다. ‘물 수능’은 결국 한국 교육의 경쟁력을 추락시킨다. 정부는 우리 아이들이 21세기 글로벌 일터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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