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관 오신다 해서 흙 묻을까봐 비닐 깔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8일 03시 00분


어제 오전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화도하수처리장 옆 구제역 소 매몰지에선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 인부에게 무슨 작업인지 물었더니 “오후에 행정안전부 장관이 오신다고 해서 (바지와 구두에) 흙 묻을까봐 비닐을 깔고 있다”고 말했다. 다섯 평 남짓한 매몰지 위에 박힌 관정 4개가 없었더라면 매몰지인지 알아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매몰지 바로 옆 개천을 따라 승용차로 3분가량 가면 한강 상수원으로 흘러드는 합류점과 만난다. 이 매몰지는 수도권 2000여만 인구의 식수원인 팔당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한 수질보전특별지역 안에 있다.

정부가 전국 구제역 매몰지 3882곳을 분석한 결과 65%인 2520곳이 한강 유역에 있었고, 하천에서 불과 3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도 149곳이나 있었다. 수도권 상수원을 끼고 있는 경기도와 강원도가 구제역에 뚫리는 순간 이런 사태는 예고된 것이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도살 처분한 가축을 해당 지자체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경기 양평, 이천, 남양주 등은 도살 처분한 가축을 마을 주변 야산에 대충 파묻었다.

양평 최대의 축산단지가 있는 개군 한우단지 주변은 길목마다 구제역 방역을 위해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평소 소 돼지 울음소리가 시끄럽기까지 했던 축사는 빈 곳이 더 많아 을씨년스러웠다. 구제역이 휩쓸고 간 양평군 개군면 계전리는 물론이고 인근 용천리 자연리 부리 내리 불곡리 곳곳이 도살 처분 가축 매몰지였다. 정부와 농민들이 앞뒤 사정을 살폈더라면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흘러나와 주변을 크게 오염시킬 것이라는 예측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은 “(구제역에 걸린 가축을) 어떻게 매몰하라는 지침이 없어 처음엔 그냥 파묻었다가 나중에 비닐로 싸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공무원도, 축산 농민도 어떻게 이토록 무신경할 수 있을까.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매몰로 인해 환경재앙이 예상되고 있다. 경기 김포시 월곶면 갈산리 한 마을의 지하수가 침출수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금은 아직 땅이 얼어 있고 추워서 가축의 부패 속도가 느리지만 날이 풀리면 전국 곳곳에서 침출수가 상수원과 지하수를 오염시킬 것이다. 이는 분명 인재(人災)다. 봄철 갈수기와 겹쳐 침출수가 상수원으로 들어간다면 수돗물 공포가 확산될 것이다.

왜 처음부터 ‘도살 처분 매몰’만 고집했는지 의문이다. 도살 처분 매몰은 구제역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구제역은 ‘세계적 기록’ 수준으로 퍼졌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국이면 뭐하는가. 이런 구체적 상황 대처에서 무사안일과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데, 장관들이 시찰이나 다니면 하늘이 우리를 구해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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